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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 찜통 텐트 식힐 물-에어컨 태부족… 탈진-실신 속출

입력 | 2023-08-04 03:00:00

[폭염속 아수라장 잼버리]
땡볕 더위에 텐트 2만5000동 ‘텅텅’… 참가자들, 더위 피할수 있는 곳 피난
“4년간 뭘했나” “난민촌 생각나게해”
외국인 참가자-가족, SNS에 비판글… 소방당국 중단 요청에도 개영식



3일 오후 ‘2023년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가한 한 외국인 학생(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전북 부안군 행사장 내에서 주변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가고 있다. 부안=박영철 skyblue@donga.com


“이런 더위는 태어나서 정말 처음이에요. 너무 힘드네요.”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가 열린 3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 야영장에서 만난 헝가리 출신 줄리아 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최고기온 35도가 넘는 폭염을 피해 그늘 쉼터로 대피한 줄리아 씨는 “시원한 물이라도 많이 제공해주면 버틸 수가 있겠는데, 너무 준비된 게 없다”고 지적했다.



● 폭염 피해, 에어컨·안개분수 밑으로
이날 잼버리 야영장은 그야말로 폭염에 찌든 모습이었다. 야영장 안에 설치한 텐트 2만5000여 동도 땡볕 더위에 대부분 비어 있었다. 세계 각국의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각종 행사와 홍보 부스가 있는 델타 구역은 방문객이 거의 없었다.

반면 더위를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는 공간은 참가자들로 붐볐다. 잼버리조직위가 무더위를 피할 장소로 만든 넝쿨 터널에서는 폭염에 지친 대원들이 맨바닥에 몸을 누이고,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청했다. 국내 참가자 최모 군(14)은 “하루 종일 사우나에 있는 것 같은데, 저녁이면 모기까지 들끓어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에어컨이 설치된 일부 실내 시설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각국에서 찾아온 대원들은 냉기를 품은 전시관 바닥에 드러눕기도 했다. 잼버리 대회를 보기 위해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온 이성원 씨(50·여)는 “가족 4명이 왔는데 남편과 아들이 힘들다며 나가 버렸다. 우리나라를 전 세계에 알릴 좋은 기회인데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야영장이 새만금 매립 당시부터 농어촌 용지로 지정된 곳이어서 물 빠짐이 용이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지난달 장마 때 생긴 물구덩이가 그대로 방치된 곳이 적지 않았고, 야영지 바닥이 질척거리는 구간도 많았다. 물기가 빠지지 않아 텐트 하단이 젖어 있는 곳도 보였다.

폭염 관련 건강 이상 증상을 보인 학생들은 야영지 내 잼버리 병원으로 이송돼 의료진으로부터 치료를 받고 있다. 박형기 기자

잼버리 야영지 내에 마련된 잼버리 병원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일반 병상뿐만 아니라 군대에서나 쓸 법한 야전 침상에도 환자들이 빼곡히 누워 있었다. 더위를 먹어 병원을 찾은 경증환자부터 119 구급대가 이송한 학생까지 뒤엉켜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소방당국은 2일 83명, 3일 101명을 이송하거나 응급처지했다.

15세 아이를 잼버리에 보낸 미국 거주 한인 A 씨는 “아이가 2일 개영식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미국 스카우트 대장이 119에 신고했는데, 구급차가 오는 데 45분이나 걸렸다”며 “아이들이 1년 이상 준비해서 참가한 잼버리인데 운영이 너무 허술하다”고 말했다.

탈진 실신 등 폭염 관련 환자들이 계속해서 나오면서 약품도 바닥을 보이고 있다. 조직위 관계자는 “전북도와 전북의사협회가 나서 제약회사 등에 치료약품 긴급 공수를 요청했고, 원광대병원에서도 약품을 지원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 개영식 소방당국 중단 요청에도 행사 강행
조직위의 준비 부족과 미숙한 운영도 도마에 올랐다. 특히 폭염 속에서 강행된 전날(2일) 개영식 행사가 무리였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당시 소방당국은 조직위에 행사 중단을 요청했지만 조직위는 20여 분간 행사를 그대로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창행 조직위 사무총장은 “중단 요청을 받았지만 갑자기 중단하고 대피 명령을 내리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행사를 계속 진행했다”고 말했다.

외국인 참가자와 가족들의 비판글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올라오고 있다. 세계스카우트연맹, 잼버리 홈페이지에는 영어로 “준비 기간이 4년이나 됐는데 뭘 한 거냐” “난민촌을 생각나게 한다” “참석자들은 식수도 화장실도 제대로 없는 곳에 오기 위해 4000파운드(약 660만 원) 넘게 지불했다” 등의 비판 글이 올라왔다. 또 다른 외국인은 “기본적인 안전 대처를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스웨덴인 마크 패리스 씨는 자신의 SNS에 “이런 상황이 어떻게 즐거울 수 있겠냐. 이미 거기 있는 사람들도 도망치고 싶어 하는데 24시간 후에 4만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착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대회 일정을 축소하거나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톨릭기후행동과 전북녹색연합 등 12개 시민단체는 잼버리 프레스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폭염은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4만3000여 명의 청소년과 자원봉사자, 대회 관계자의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 대회 강행은 너무나도 무모한 일”이라며 대회 중단을 촉구했다.

한편 조직위는 폭염 피해 예방 차원에서 3일 진행 예정이었던 야영지 영내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또 폭염 상황에 따라 영내 과정을 줄이고, 영외 과정 활동을 확대하는 등 프로그램을 탄력적으로 수행할 계획이다.



부안=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부안=최미송 기자 cms@donga.com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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