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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 텍사스 성매매 여성들의 ‘약사 이모’ [따만사]

입력 | 2023-05-18 12:00:00

이미선 약사 “기다리면 그들도 마음 열더라”
동네 이웃들에게 무료 상담 도움…상담 센터 운영
독거노인, 빈민 등 다양한 이웃들을 상대로 후원 활동까지…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집창촌 미아리 텍사스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이미선씨. 사진=김예슬 기자.23.05.11



“어제 과음을 했어.”

비틀거리는 한 손님이 약국에 들어오자 이미선 약사(62)는 당황하지 않고 약을 찾는다. ‘미아리 텍사스’ 골목 안쪽에 위치한 한 약국. 성북구 하월곡동에 위치한 성매매 집창촌에는 약국 하나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미선 약사는 28년째 ‘건강한 약국’을 미아리 텍사스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이 동네가 고향이고 단지 ‘좋아서’ 쭉 살고 있다. 이미선 약사는 10년간 인천에서 산 것을 제외하면 이곳 미아리 텍사스 토박이다.

이미선 약사와의 인터뷰 도중 한 여성은 약국 안팎을 오가며 두세 번을 서성거렸다. 이 씨는 “이상하죠? 왜 자꾸 안 들어오지?”라며 걱정하는 얼굴로 다시 나가본다. 이 여성은 결국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 씨는 이곳에서 ‘약사 이모’라 불린다. 다소 협소해 보이는 약국 안에서 이 씨는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진심 어린 위로를 해주는 옆집 이모와 같은 존재다.

집창촌에서 약국을 운영하다 보니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사람이나 부탁을 하러 들어오는 사람이 여럿 있다. 이런 곳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것이 무섭지 않을까. 이 씨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하는 건 거짓말 아니겠냐”며 솔직하게 답했다. 그는 “이 동네에서 112에 신고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농담조로 말했다.


“그럼에도 성매매 여성들에겐 친절하게 약에 대해 설명해 준다”
이 씨는 자신의 약국에 찾아오는 성매매 여성, 독거노인에게 한없이 친절하다. 외로운 사람들일수록 남의 시선을 피하기 마련. 이 씨가 그들에게 다가가는 비결은 ‘기다림’이라고 했다. 특히 이 씨는 성매매 여성들에게 억지로 다가가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사적인 얘기를 먼저 물어본다든지 함부로 말을 걸어 친해지지는 않는다”라며 “하지만 약에 대해서만큼은 자세하게 설명한다. 두루두루 지내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들도 마음을 열더라”고 답했다.

또 그는 “약을 사러 올 때마다 부작용에 대한 설명도 하고 상담도 해준다. 건강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친구들이 많다”며 “그 친구들은 보통 약국에 들어올 때부터 당당하게 들어오지 못하고 움츠리고 들어온다. 일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필요한 약 하나도 제대로 사지 못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마음을 열게 된 그들과 친해지게 되면 이 씨는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 씨는 “성매매 일을 하다 유방암에 걸려 일을 그만둔 A 씨가 있었다. 그 친구에게 밥 한 끼 사준 기억이 난다. 또 술을 많이 마셔 간이 망가진 B 씨에게 몸에 필요한 약을 선물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약국의 한 공간에 마련된 ‘건강한 문고’. 동네 주민들이 책을 2주일에 두 권 빌려갈 수 있도록 도서 대여도 하고 있다. 사진= 김예슬 기자.23.05.11


“힘들었겠다”, “아팠겠다”…한마디가 그들에게 가장 큰 선물
성매매 일을 하다 자해를 하고 약국에 찾아오는 여성들도 있다. 그는 “그런 아이들을 보면 손목부터 팔 끝까지 길게 칼자국이 난 상태로 약국에 들어오기도 한다. 그걸 ‘주저흔’이라고 하는데 그럴 때 정말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그렇게 남은 흉터 자국은 어찌 보면 ‘나는 살고 싶다’의 의미라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럴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아팠겠다”, “힘들었겠다”라는 위로 한 마디를 하거나 영양제를 선물하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이 씨는 그런 경우 그들에게 전문가의 치료를 받을 것을 강하게 당부한다고 전했다.

또 이 씨는 성매매 여성에 대해 “이 사람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처럼 도움을 받거나 자립해 돈 벌기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성매매 여성들이 기술을 배우거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대학 혹은 아카데미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라고 말했다.

성매매 여성부터 소외된 이웃들에게 “건강한 상담센터”
이 씨는 2012년에 취득한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그가 자격증을 딴 이유는 단순히 ‘사람 심리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약국을 들어서기 전 입구 옆에는 ‘건강한 상담센터’라는 팻말이 붙여져 있었다. 이 씨의 상담을 받기 위해 찾으러 오는 대다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약사 이미선 씨가 ‘건강한 상담센터’ 라는 나무 팻말이 보이는 간판 앞에 서 있다. 사진=김예슬 기자.23.05.11



그는 “‘외로움’을 호소하는 등 심리적인 문제로 상담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특히 “가족으로부터 소외를 당하는 중년 남성과 중년 여성분들이 많다. 중년 남성은 아내랑 자식들로부터 외로움을 느끼고 중년 여성은 집안일에 시달리고 자식들로부터 속상한 점이 많아서 찾아온다. 그럴 때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을 한다”고 했다. 약국의 문은 이웃들이 언제든지 상담을 하러 들릴 수 있도록 항상 활짝 열려 있다.

이 씨가 이웃들에게 도움을 줘야겠다고 많이 생각하게 된 계기는 2005년. 약국 바로 앞 성매매 업소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성매매 여성이 숨진 이후부터다. 이 씨는 “약국 문만 열면 바로 보이는 앞집에 살던 친구들이다. 그 일(성매매)을 하다가 다섯 명의 성매매 여성이 숨졌다. 나한테는 개인적으로도 좀 힘든 일이었다. 성매매 여성으로 삶을 마감한다는 게 얼마나 아프고 힘든 일일까. 고민을 시작했고 뭔가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건강한 약국’이 자리한 골목. 골목 입구에는 ‘미성년자 출입금지 구역’이라는 표시가 써있다. 사진= 김예슬 기자.23.05.11



이 씨는 ‘온라인 앵벌이’를 한다며 웃었다. 그는 “내가 지어낸 단어인데, 앵벌이는 구걸. 좋게 말하면 후원이라는 뜻이지만 일상적인 언어는 아니다”라고 했다. 성매매 여성, 독거노인 등을 돕기 위해 후원금을 모으는 행동을 뜻한다고 한다. 이 씨가 한 독거노인의 집에 찾아갔을 때 반찬도 거의 없고 에어컨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는 “지인이나 SNS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에게 후원 모금을 알린다. 예를 들면 독거노인에게 새 에어컨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후원이 절실한 상황을 알린다. 그러면 거기에 반응을 하고 마음을 내어준 사람들이 함께 후원금을 모금하여 새 에어컨을 설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현재 이 씨는 한 미혼모 가정을 돌봐주고 있다. 그는 “6년 전에 알게 된 미혼모의 이야기를 듣고 지금까지 후원 활동을 하고 있다”라며 “지인들과 후원자를 모아 기저귀를 보내주기도 하고 한 달에 50만 원 정도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돈을 모아 집세, 아이 학원비, 아이 엄마 약값 및 병원 치료비를 보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바하밥집을 통해 노숙인, 독거노인들을 10년 넘게 후원하고 있다. 노숙자, 빈민들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급식지원을 한다. 이 씨는 “며칠 전에는 어버이날이어서 더 외로웠을 그분들을 위해 지인들과 함께 후원금을 모아 선물을 전달했다. 홍삼액, 여행용 칫솔세트, 파스, 쌍화탕 등 100여 개를 선물했다”고 했다.


바하밥집 활동의 하나로써 보문동 인근 어려운 분들에게 음식과 생필품을 공급하는 사진. 사진= 본인 제공



그러면서 “요즘에는 푸른고래 리커버리 센터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회적 고립 청년을 돕는 단체로 설립할 때부터 함께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푸른고래 리커버리 센터는 ‘자립준비청년’들과 ‘고립은둔청년’들이 회복하는 것을 돕는 회복 공동체다.

미아리 텍사스에는 실제로 기초수급권자나 차상위계층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 씨는 복지사각지대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는 한편 “사회복지 공무원이 2년마다 한 번씩 바뀌는 점이 개선되었으면 한다”라고도 호소했다. 그는 “공무원이 노인들을 2년 동안 만나면서 그분들의 상황에 대해서 숙지도 하면서 정도 든다. 그런데 2년 뒤에 다시 새로운 공무원으로 바뀌어서 새로운 것들을 다시 숙지해야 한다는 것이 좋은 부분은 아닌 것 같다”라며 “그 지역에서 주민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고용해서 지역 공무원처럼 하는 역할을 하면 좋지 않을까”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
미아리 텍사스에서는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 씨는 “재개발로 이 지역에서 벗어나더라도 약국을 계속 운영하며 지역사회 벗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이 씨의 가치관은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이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돈, 외모와 같이 외적인 것이 중요시 여겨지는 점에 대해서 허탈함을 드러냈다. 이 씨는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풍파를 많이 겪었다. 그러다 보니 외적인 것보다는 내면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깨닫고 결국엔 타인을 배려하는 삶이 중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집창촌 미아리 텍사스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이미선씨. 사진=김예슬 기자.23.05.11



그러면서 “돈, 사치가 아닌 남을 돕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특히 학생운동을 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경험도 있다.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을 중요하게 느꼈다”고 했다.

이 씨는 현재 한국인의 행복도가 OECD 회원 38개국 중 최하위권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또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원인 중의 하나로 복지 제도의 문제점을 꼽았다. 그는 “친하게 지내던 미혼모 친구가 회사를 다녀서 약간의 월급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나라에서 전혀 혜택을 받지 못했다”며 “아이와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나가야 하는데 작은 월급으로 어떻게 살아가나”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 씨는 약사로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이 무엇이었느냐는 물음에 “약국에 자주 찾아오며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성매매 일을 그만뒀을 때다. 케이크를 사들고 고맙다고 약국을 찾아왔는데 그때 정말 기뻤다”라고 답했다.


이미선 약사가 성북구에 있는 OO초등학교에서 약물 교육을 하며 아이들과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본인제공



이 씨는 앞으로 약사로서의 개인적인 의무나 목표는 거창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저 지금처럼만 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내 좌우명은 ‘Now and here, I can do my best’다. 지금 나는 여기서 내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지나간 과거에 후회하지 않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지금 처해진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이 내 삶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김예슬 동아닷컴 기자 seul5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