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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의 기술 봉쇄에… 中 ‘반도체 인해전술’로 AI 자급자족 시도

입력 | 2023-05-09 03:00:00

美, 첨단 반도체 對中 수출 차단
中, ‘질보다 양’ 저성능 여러개 섞어
2조원대 보조금으로 美규제 우회
WSJ “성공 불확실한 최후의 시도”




글로벌 첨단 기술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해 수출 규제를 비롯한 ‘반도체 봉쇄’ 끈을 죄고 있는 미국에 대응해 중국이 기술 자급자족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촘촘한 대중(對中) 규제가 오히려 중국 첨단 기술력 향상을 이끌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미국 고성능 첨단 반도체에 의존하지 않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고 7일 보도했다.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유입 규제 같은 미 수출 규제에 대한 우회로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WSJ에 따르면 중국 정보기술(IT) 업계가 시도 중인 우회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제재 대상이 아닌 저성능 구형 반도체를 활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에서 자체 기술로 생산한 여러 유형의 반도체를 결합해 활용하는 것이다.

현재 IT 업계에서 생성형 AI ‘챗GPT’ 같은 고성능 거대언어모델(LLMs) 훈련에 가장 많이 쓰이는 반도체는 미 엔비디아의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A100과 H100이다. GPU는 동시에 많은 연산을 처리할 수 있어 AI의 학습과 운영에 주로 쓰이는 시스템 반도체다. 바이든 미 행정부가 지난해 10월 시행한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 조치로 중국은 더 이상 이 반도체들을 수입할 수 없게 됐다.

대신 엔비디아는 중국 시장에 규제 대상이 아닌 저성능 구형 반도체 A800과 H800을 공급하고 있다. WSJ는 두 반도체에 대해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영상 추천 알고리즘 같은 소규모 AI 개발에는 효과적이지만 대규모 AI 모델 개발에는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는 챗GPT 같은 대규모 AI 모델에 고성능 반도체가 5000∼1만 개 들어간다고 추정했다. 최근 비공개회의서 나온 중국 반도체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현재 중국 내 확보된 A100 반도체 재고는 4만∼5만 개에 불과하다. 중국 기업들은 제재가 지속될 것에 대비해 첨단 반도체를 최대한 아껴 놓는 길을 택했다. 바이두를 비롯한 중국 기술기업의 자체 생산 반도체는 아직 성능이 떨어진다.

이에 텐센트 같은 중국 업체들은 ‘질보다 양’을 택해 구형 반도체를 많이 활용해 최첨단 반도체 성능까지 끌어올리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양유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H100을 100개 쓰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내려면 H800이 3000개 이상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미국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여러 종류의 반도체를 결합해 성능을 높이는 방법도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일반적으로 여러 반도체나 소프트웨어 기술을 결합하면 작동이 안정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페이스북 모기업인 메타플랫폼스의 AI연구원 수전 장은 “미국에서는 거의 시도되지 않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평했다.

이 같은 중국 자구책 효과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중국은 지난해 본토에 상장된 반도체 회사 190곳에 보조금 2조3000억 원을 지급하는 등 ‘기술 굴기(崛起)’에 힘쓰고 있다.

WSJ는 “중국 기술기업의 다양한 우회 시도가 성공한다면 미국 제재를 극복하고 미래에 닥칠 제약에 더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중국에 첨단 장비 수입이 제한되는 이상 자체 기술만으로 미국에 맞먹을 만큼 성장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일단 하드웨어 기반을 마련하면 소프트웨어 측면의 AI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