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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관 칼럼]‘톈안먼 망루’ 박근혜, ‘혼밥’ 문재인, 尹 중국 전략은 뭔가

입력 | 2023-05-01 03:00:00

미중 패권 전쟁 국면에서 확실히 미국 편에 선 尹
中은 “부용치훼” “불타 죽을 것” 노골적인 반발
오만함에 당당하되 정교한 ‘외교 공간’ 열어놓길
국가 생존 걸린 문제… 국민 설명도 제대로 해야



정용관 논설실장


2015년 톈안먼 망루에 올랐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은 30년을 넘긴 한중 수교 역사에서 가장 논쟁적이고, 또 어색했던 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중국 공산주의 국가의 시작을 알린 전승절 70주년 행사임과 동시에 최대 패권국 미국을 겨냥한 ‘군사 굴기’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한 사상 최대의 열병식 자리였다. 여기에 시진핑 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선 것이다.

불과 8년도 안 지났지만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상황이 가능했나 싶다. 미국은 달가워하지 않은 게 분명했지만 박 전 대통령의 톈안먼 행사 참석을 막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당시 한국을 찾았던 오바마 행정부 당국자의 비공식 설명 한 토막이다. “탐탁지 않았지만 한국 뜻을 들어주면 일본과의 화해에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한중 관계 개선을 계기로 한중일 정상회담이 이뤄졌고 아베 총리의 방한, 위안부 합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등 한일 관계 개선으로 이어졌다. 사드와 위안부 합의 번복 등으로 한중 한일 관계는 일거에 뒤집혔지만….

미국은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과 전략대화의 끈을 유지하고 있었다. 중국을 “친구이자 적”, 즉 ‘프레너미(frenemy)’로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중국의 국력이 날로 커지곤 있지만 미국의 유일 패권 아성에 도전할 정도는 아니라고 봤다.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 안에서 관리가 가능하다고 착각한 것이다. 톈안먼 망루에 오를 때는 적어도 한국 외교에 활동 공간은 있었던 셈이다.

미국은 경쟁국이 자국 국내총생산(GDP)의 60%를 넘어서면 패권 도전국으로 본다고 한다. 즉, 60%를 넘어서는 순간 짓밟기에 나서는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중국 GDP가 미국의 60%를 넘은 게 바로 2015년이다. 그제서야 미국은 미몽(迷夢)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렸다. 오바마 행정부 말 미국에선 “미국의 세기는 끝났다” “중국으로 패권이 넘어간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2016년 트럼프가 승리했던 주요 원인 중 하나도 중국을 더 거칠게 다룰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중국을 직접 찾아 “높은 산봉우리” “대국”이라고 치켜세우고, 시 주석의 ‘중국몽’에 대해 “전 인류와 함께 꾸는 꿈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 것에 트럼프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짐작이 어렵지 않다. 그래도 트럼프는 문 전 대통령의 중재로 김정은과 북핵 담판에 나서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글쎄다.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담판에 나선 것은 문 전 대통령의 중재 노력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중국 포위 전략에 김정은을 활용할 여지가 있는지 타진하려는 계산이 더 강했을 것이다. ‘혼밥’ 굴욕, 북핵 해결 실패 등을 겪은 문 전 대통령이 뒤늦게 한미 동맹 강화에 노력을 기울인 것은 임기 말인 2021년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한미 동맹 강화 기조는 이런 미중 패권 구도의 변화 속에서 봐야 할 것이다. 미중 ‘30년 패권 전쟁’은 본격화했다. 중국 GDP는 이미 미국의 80% 수준이다. 중국은 인공지능(AI)과 6G, 우주 경쟁 등에서 미국 턱밑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30년 뒤의 승자가 누구일지 어찌 알겠나.

분명한 건 바이든도 트럼프 못지않게 거칠고 집요하다는 점이다. 동맹국에 미국과 중국 중 한쪽을 선택할 것을 강요한다. ‘안미경중(安美經中)’ 같은 모호한 줄타기 전략을 취하기 어렵게 됐다. 톈안먼 망루로 오르던 때와는 전혀 다른 제로섬 국면이 펼쳐진 상황에서 윤 정부의 운신의 폭은 아주 좁다. 한마디로 말해 미국의 반대편에 절반의 베팅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윤 정부의 ‘미국 중시’ 전략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중국과도 호혜” 운운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건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중국은 윤 대통령의 대만 언급에 부용치훼(不容置喙), 즉 “입 닥치라” 같은 막말을 하고 “불장난을 하면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이런 중국에 당당히 할 말은 해야 한다. 다만 중국에 크게 의지해온 우리 경제에 악영향은 없을지,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괜찮은 건지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굳이 중국을 앞장서 자극할 필요는 없지 않나. 윤 대통령은 ‘가치동맹’을 내세운다. 자유의 가치는 소중하나 그 가치동맹이 어떻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건지,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생존의 길이라는 건지 등에 대한 설명이 없다. 국빈 방미가 끝난 지금, 정교하고 세련된 대중 전략은 있는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