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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전세사기 9달 만에 경매 유예… 또 ‘虛送 행정’ 되풀이 안 된다

입력 | 2023-04-20 00:00:00

뉴시스


어제 오전 인천지방법원의 경매법정에서는 전세사기 피해 주택 11건에 대한 경매가 진행됐다. 아파트·오피스텔·빌라 11채는 인천 일대에서 주택 2700여 채를 세놓고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이른바 ‘미추홀구 건축왕’ 남모 씨에게 사기를 당한 주택이었다. 정부가 경매 일시 중단 방침을 밝힌 다음 날에도 예정됐던 피해 주택들의 경매는 그대로 진행된 것이다. 결국 낙찰된 한 피해 주택 세입자는 보증금 6200만 원 중 최우선 변제금 2200만 원만 받고 집을 비워야 하는 처지다. 이 세입자는 “앞으로 살 집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쏟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제 경매 일정 중단 또는 유예 방안 마련을 지시한 뒤 정부가 부랴부랴 미추홀구 등의 경매와 매각을 6개월 이상 유예하기로 했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가슴 졸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유예 조치로 피해자들은 살던 집이 경매에서 낙찰돼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빈털터리가 돼 쫓겨나는 최악의 상황은 일단 피하게 됐지만 6개월 정도 시간을 번 것일 뿐 세입자가 받지 못한 보증금을 돌려주는 등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재난 상황”이라고 아우성을 쳤는데도 늑장 대응으로 사태를 키우다 9개월 만에야 경매 유예 조치를 내놓은 정부는 이제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후속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한다. 거주 주택이 경매에 나왔을 때 피해자가 먼저 매수할 수 있도록 하는 ‘우선매수권’ 등 피해자의 요구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우선매수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경매자금 대출 같은 맞춤형 금융 지원 프로그램도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미추홀구 건축왕’에게 사기를 당한 주택 중 106채가 낙찰돼 매각이 완료됐다고 하니 이미 보증금을 날리고 집을 뺏긴 이들에 대한 지원책도 필요하다.

전국 곳곳이 전세사기 지뢰밭이다. 경기 동탄신도시 일대에선 오피스텔 250여 채를 소유한 임대인이 파산해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부산, 경북 등에서도 피해 접수가 잇따랐다. 정부는 전국적으로 전세사기 실태를 조사해 위험 가구와 피해 발생 가능성 등을 산정하고 선제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시늉 내기 대책으로 시간만 보내면서 피해자들의 피눈물을 뽑는 ‘허송(虛送) 행정’은 더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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