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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황형준]이상한 변호사와 노쇼 변호사

입력 | 2023-04-13 21:30:00

황형준 사회부 차장


수능 만점 출신의 의대생이 자기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선 동생이 죽은 형의 가슴을 세게 때리는 장면을 부모가 목격했다. 유일한 목격자지만 자폐를 겪고 있는 동생은 ‘죽는다’는 말만 반복할 뿐 사건에 대해 제대로 진술하지 못해 살인범으로 몰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인기 캐릭터 ‘펭수’ 아이템을 장착할 정도로 ‘덕후’인 동생의 마음을 열기 위해 변호사는 ‘펭수 마이크’를 잡고 열창한다. 또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기 위해 의대생 방을 찾아 자살을 암시한 일기를 발견한다. 그렇게 동생은 누명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자폐를 앓고 있는 천재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3회’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영우 같은 변호사가 드라마에만 있는 건 아니다. 재심 전문으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는 1999년 삼례 나라슈퍼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3∼6년 동안 옥살이를 한 ‘삼례 3인조’와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쓴 이들을 대리해 재심을 진행한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변호사들은 누구나 법과 지식이 부족한 의뢰인을 법정에서 대리하는 기본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승소를 위해 의뢰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현장을 조사하고 관련자를 만나고 법정 증언을 요청하는 것도 변호사의 중요한 업무다.

이런 변호사들의 자존심과 명예를 실추시킨 인물이 항소심 ‘노쇼’로 논란이 된 권경애 변호사다. 권 변호사가 맡은 사건은 2015년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 박주원 양(당시 16세) 사건이다.

박 양의 어머니는 2016년 8월 권 변호사를 선임해 서울시교육청과 가해 학생 등 30여 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지난해 2월 1심은 피고 30여 명 중 1명에게만 “5억 원을 지급하라”며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박 양의 어머니는 항소했지만 권 변호사가 항소심 재판에 3회 출석하지 않아 지난해 11월 항소가 취하됐고 1심 결과도 패소로 변경됐다. 재심 청구는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어렵고 권 변호사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는 가능하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유족 측은 13일 권 변호사 등을 상대로 2억 원을 배상하라는 취지의 소송을 냈다.

민사소송은 법원에서 변론기일 통지서를 보내고 이메일 또는 문자메시지로도 날짜를 알려준다. 권 변호사는 9000만 원 배상의 각서를 썼을 뿐 어떤 이유로 변론기일에 불출석했는지, 왜 유족에게 5개월 동안 항소심 결과를 알리지 않았는지 등에 대해 충분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권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이었지만 조국 사태를 계기로 민변을 탈퇴하며 이른바 ‘조국 흑서’를 집필해 주목받았다. 하지만 본업과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직업인은 사이비일 뿐이다. 권 변호사가 6년여 동안 이 사건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지도 의문이다.

“드라마에 나온 우영우 같은 변호사가 있냐”는 박 양 어머니의 호소를 법조계는 무겁게 되새겨야 한다. 그들의 업무가 한 사람의 인생을 천국으로 만들 수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황형준 사회부 차장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