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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간 지지부진하던 의료 AI… 영상판독 역할 맡으며 전환점 모색

입력 | 2023-03-13 03:00:00

의사 대체 역할 기대 ‘닥터 왓슨’, 수익성 없어 11년 뒤 사업 종료 수순
최근 AI는 진단 보조 역할에 초점… 영상 정보 학습해 정확도 80% 이상
예후까지 관리할 AI 개발도 활발



흉부 엑스레이(X-ray) 영상판독 서비스 ‘뷰노메드 체스트 엑스레이’를 개발한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뷰노 관계자들이 ‘뷰노메드 체스트 엑스레이’로 모의 분석한 흉부 엑스레이 결과를 해외 기업인에게 설명하고 있다. 아래쪽 사진은 ‘뷰노메드 체스트 엑스레이’를 구동한 화면. 뷰노 제공


오픈AI의 대화형 인공지능(AI) 챗봇인 ‘챗GPT’ 등장 이후 산업계 전반에서 AI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는 의사를 보조해 영상을 판독하는 AI 개발과 검증이 활발해지며 AI가 의사의 진단을 보조하는 역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2일 관계기관에 따르면 국내 대형병원과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체내에서 병변과 질환을 확인할 수 있는 의료영상 판독 AI를 개발하고 성능 검증을 진행 중이다. IBM이 2010년 의료AI ‘닥터 왓슨’을 선보인 뒤 10여 년간 지지부진했던 의료AI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 현장서 의료AI 연구성과 속속 공개
의료 부문에 AI가 접목된 건 2010년부터다. IBM은 2010년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추천하는 의료AI ‘닥터 왓슨’을 출시했다. IBM은 닥터 왓슨에 150억 달러(약 19조8000억 원)를 투자하며 프로그램 개발에 공을 들였지만 수익성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2021년 사업을 접었다. ‘왓슨 헬스’ 사업부는 투자회사인 ‘프란시스코 파트너스’에 매각됐다.

닥터 왓슨 같은 의료AI가 세상에 등장하자 당시엔 AI가 의사의 진단 행위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진단의 정확성에 한계가 드러나며 의료AI는 의사의 진단을 보조하는 역할로 자리를 옮겨가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연구팀은 머신러닝 기반 심혈관질환 진단기술을 최근 개발하고 연구 결과를 지난달 국제학술지 ‘프런티어스 인 카디오배스큘러 메디신’에 발표했다. 이 진단기술은 광간섭단층촬영(OCT) 영상 정보를 AI에 학습시켜 환자의 혈압에 따라 관상동맥의 협착 정도를 평가하고 변화 추이를 예상한다. OCT는 혈관 조직 내 미세구조를 확인하는 데 사용되는 영상기술이다. 환자 47명의 101개 관상동맥을 대상으로 성능을 검증한 결과 83.2%의 정확도로 관상동맥 협착 정도의 변화를 예측했다.

한림대의료원은 지난해 11월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을 분석해 맹장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인 충수염을 진단하는 AI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충수염 환자 1839명과 충수염이 아닌 것으로 진단받은 환자 1782명의 데이터를 학습시켜 CT 영상을 실시간으로 판독하는 알고리즘을 구현했다. 검증실험에서는 대장염, 말단회장염, 상행결장게실염 등 충수염과 유사한 질환을 걸러내면서 89.4%의 정확도로 충수염을 구별해냈다.


● ICT 기업·스타트업 두각 드러내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의료영상 AI 전문 스타트업들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카카오의 AI 자회사 카카오브레인은 이달 3일 기업설명회에서 환자의 흉부 엑스레이 영상을 보고 판독문을 생성할 수 있는 AI 프로그램 구상안을 내놨다. 연말까지 시범 프로그램이 공개될 예정이며 향후 엑스레이 영상뿐만 아니라 CT 영상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신생 기업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의료AI 기업인 뷰노에 따르면 이 회사의 AI 기반 의료영상 판독 프로그램을 사용했을 때 흉부 엑스레이 영상에서 폐 결절을 찾아내는 비율은 AI를 활용하지 않았을 때의 2배가 넘는다. 지난달 국제학술지 ‘래디올로지’에 발표된 관련 연구 논문에 따르면 1만476명의 흉부 엑스레이 영상을 AI로 분석한 결과 AI의 도움을 받은 판독에서 폐 결절 검출률은 0.59%로 AI의 도움을 받지 않은 판독에서의 검출률(0.25%)보다 2.4배 높았다.


● 진단을 넘어 치료, 예후 관리까지 가능할까
국내에서는 닥터 왓슨의 후발 주자로 여겨지는 ‘닥터앤서’가 진단 보조 역할을 넘어 치료법 제시, 예후 관리 등 전주기적 관점에서 의료진을 지원하는 의료AI의 위상을 넘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고 30개 의료기관이 참여 중인 닥터앤서 2.0 사업은 질환의 예측·분석, 진단 보조, 치료 지원, 예후 관리에 걸쳐 진료 전주기적 관점에서 의료진의 진료를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사업단은 의사의 진료를 보조하는 역할로 선을 긋고 있지만 현재 영상 판독을 중심으로 도입된 의료AI 기술과 비교하면 그 영역이 넓어진다. 국비 280억 원이 투입되는 닥터앤서 2.0은 현재 임상 현장에서 성능 검증을 앞두고 있다.

박정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hes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