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전문의 협의회장·정신건강의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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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 분만이 필요한 31주 고위험 산모가 실려 왔다. 의료원에 고위험 산모 신생아 집중 치료실이 없어서 받을 수가 없었다. 한밤중에 뇌출혈 환자가 방문했는데 그 시간 해당 수술을 집도할 전문의가 없어서 다른 병원으로 보냈다. 척추 분야 진료 전문의가 없어 실족 추락한 복합 외상환자를 다른 병원에 가게 했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발생한 사례들이다. 병원이 많고 건강보험 제도가 있으니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같은 신종 감염병 초기에는 감염 경로, 치명률이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고 치료제도 없는 상황이라 선뜻 환자를 받을 병원을 찾기 어렵다. 또한 질환에 따라서 취약계층은 자기부담금으로 인해 의료원이 마지막 선택지인 경우도 있다. 어떠한 좋은 제도를 도입해도 민간 병원이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나 질환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진료권역의 병상 공급 숫자가 많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병상이 초과 공급된 서울의 권역 응급의료센터의 중증외상 전원율은 10.2%로 전국 평균 6.2%보다 오히려 높다. 예방 가능 외상 사망률도 서울이 20.4%로 전국 평균 15.7%보다 높다. 또 다른 응급질환보다 전원율이 낮아야 할 심뇌혈관 질환 전원율이 3.1%로 다른 응급환자 전원율보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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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는 국립중앙의료원 신축 이전 규모를 본원 526병상으로 통보했다. 노후화된 건물, 오랫동안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2차 의료기관인 국립중앙의료원의 현재 역량은 그렇다 치고 신축·이전 사업을 통해 거듭나는 미래에는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상급종합병원 수준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상급종합병원이란 중증 질환을 많이 볼 수 있는 병원이다. 국내 의료기관 평균을 보면 상급종합병원은 평균 1000병상이 넘고 전문의 수는 300명이 넘는다. 필수중증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권역임상센터를 운영하는 전국 대학병원은 평균 988병상이다.
새로 지어지는 국립중앙의료원의 규모는 최소한 본원 800병상은 돼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가병원의 미래 혹은 국민의 건강을 좌우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재난은 매번 같은 얼굴로 오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진료 역량 부족으로 받지 못하는 환자가 없도록 국가 명령으로 동원 가능한 국가병원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 이미 확정된 국립중앙의료원의 사업 규모를 재검토하고 확대·발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전문의 협의회장·정신건강의학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