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를 것이다/정보라 지음/428쪽·1만7000원·퍼플레인
정보라 전에 정도경이 있었다.
지난해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의 10여 년 전 필명은 정도경이었다. ‘저주토끼’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까지 정 작가는 오랜 시간 글을 써왔다. 이 책은 그 뿌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초기 단편 소설을 엮었다. 정도경이라는 이름으로 썼던 초기작 중 9편과 정보라로 이름을 알린 뒤 쓴 미발표작 ‘비 오는 날’이 담겼다.
“마술적 사실주의, 호러, 공상과학(SF)의 경계를 초월했다”는 부커상 심사평처럼 저자의 초기작 역시 환상과 현실이 온통 뒤섞여 있다. 첫 번째 단편 ‘나무’ 속 나무는 주인공 ‘그’의 친구다. 어릴 적 그는 친구와 함께 행인에게 장난을 치다 붙잡혀 땅속에 묻혔다. 그는 빠져나왔으나 친구는 흙 속으로 빨려 들어간 뒤 나무로 변했다. 이후 망나니처럼 살던 그는 청년이 돼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여인은 어린 시절 그에게 해를 입혔던 행인의 딸이었다. 이내 여인은 그의 친구인 나무에 붙잡혀 생명을 빨아 먹히고 만다. 그는 죄책감과 비통함을 안은 채 세상 밖으로 나아간다. 비극을 기억한 채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려는 그의 태도에서 왠지 모를 위안을 얻는다.
저자는 “현실이 더 호러이고 그로테스크하며 부조리하다”고 말한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어쩌다 보니까 나는 본의 아니게 복수 전문 작가가 된 것 같은데 많은 경우 화가 나서 글을 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저자의 분노와 그로 인해 빚어진 이야기들은 순리와 정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