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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돌발 한파 ② 늦은 저녁 ③ 터널 부근… 블랙아이스 ‘비상등’

입력 | 2023-01-17 03:00:00

구리포천 빙판길 44중 추돌



15일 오후 9시 15분경 경기 포천시 구리포천고속도로 포천 방면 축석령터널 인근에서 차량 40여 대가 연쇄 추돌한 현장을 소방관들이 정리하고 있다. 경기북부탑뉴스 제공



《‘블랙아이스’ 이럴 때 주의를


구리포천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차량 44대 연쇄 추돌 사고 원인으로 경찰과 전문가들은 ‘블랙아이스’를 거론하고 있다. 블랙아이스는 갑자기 온도가 떨어지는 저녁이나 새벽 시간대 터널 등 도로 위 그늘진 구간에 주로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겨울철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도로가 미끄러울 경우 앞차와의 간격을 충분히 확보하는 방어운전이 필수”라고 조언했다.》



“충주에서 외할머니 49재를 모시고 가족들과 집에 오던 중 사고를 당했어요. 평소 시어머니도 잘 모시고 아이들에게도 늘 좋은 엄마였는데….”

구리포천고속도로 연쇄 추돌사고로 숨진 문모 씨(42·여)의 시삼촌 권모 씨(61)는 16일 경기 의정부성모병원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권 씨는 “운전을 했던 남편은 혼수상태인데 뇌사 판정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며 “설을 앞두고 충주까지 동행했던 문 씨의 시어머니는 다리가 부러졌다. 일가족에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삼켰다. 차에 함께 타고 있던 두 딸과 막내아들은 타박상을 입었다.

문 씨가 탄 차량은 15일 오후 9시 15분경 구리포천고속도로 포천 방면에서 앞서 가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빙판길에 1차로에서 3차로로 미끄러지며 속도를 급격히 줄이자 이를 피하려다가 중앙분리대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경기북부경찰청에 따르면 구리포천고속도로 축석령터널 인근에서 발생한 이 사고로 문 씨가 숨지고, 문 씨의 남편 등 3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28명이 경상을 당했다. 경찰은 도로 위에 얇게 얼어붙은 이른바 ‘블랙아이스’를 유력한 사고 원인으로 보고 있다.
● ‘블랙아이스’에 차량 44대 연쇄 추돌

블랙아이스는 녹은 눈이나 비가 얼어붙으면서 도로가 빙판이 되는 현상이다. 매연과 함께 얼면서 검은색을 띠기 때문에 운전자가 식별하기 쉽지 않다. 사고 당일 오후 11시경 동아일보 기자가 방문한 사고 현장 인근 도로 곳곳에는 스케이트장 같은 빙판이 조성돼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었다

현장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가 블랙아이스가 생기기 쉬운 상황에서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블랙아이스는 갑작스러운 기온 저하에 따라 생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장 안전조치 관계자는 “15일 오후 4시부터 제설 작업을 했지만 급격하게 온도가 떨어지면서 도로에 남아 있던 수증기와 눈이 얼어붙어 블랙아이스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블랙아이스는 저녁이나 새벽 등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상황에서 터널과 야산 부근 등 그늘진 구간에 주로 발생한다”며 “이번 사고도 저녁 시간대 급격한 온도 저하로 터널 인근 도로 위 아스팔트 틈새에 녹은 물이 얼어붙어 차량이 미끄러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맨 앞에서 미끄러진 SUV를 뒤따르던 차량 2대가 급하게 속도를 줄이다가 가드레일에 충돌했고, 뒤에서 주행하던 44대가 연쇄 추돌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사고 2시간 전인 오후 7시경 포천 어하터널 앞에서도 빙판길에 미끄러진 차량 14대가 연쇄 추돌해 3명이 경상을 입었다.
● “빙판길 사고가 치사율 1.5배 높아”
블랙아이스 빙판길 사고는 일반 교통사고보다 치사율이 높다. 도로교통공단이 2017∼2021년 교통사고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총 4932건의 빙판길 교통사고로 122명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를 환산한 치사율은 빙판길 사고(2.5)가 일반 교통사고(1.6)의 1.5배나 됐다.

빙판길의 경우 제동거리가 길기 때문에 연쇄 추돌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2021년 한국교통안전공단의 ‘빙판길 제동거리 실험’에 따르면 빙판길 제동거리는 일반 도로에서보다 최대 7배나 길었다.

이성렬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갑자기 기온이 떨어질 경우 운전자 스스로 앞차와의 안전거리를 충분히 확보하고 서행하는 ‘방어운전’에 힘써야 한다”며 “겨울용 타이어를 장착하거나 타이어의 마모 상태도 꾸준히 점검하는 게 좋다”고 했다.


포천=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의정부=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최미송 기자 cm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