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뭉스러운 섬 여의도에선 오늘도 진심을 숨긴 속내, 사실에 가까운 거짓말들이 쏟아집니다. 정치인들의 능글맞은 말과 미묘한 글 뒤에 숨겨진 진의, 그들이 공개적으로는 말하지 않는 진짜 뒷이야기, ‘언락’(Unlock) 해드리겠습니다. 지난주엔 ‘안방 여포’란 신조어에 꽂히신 분이 계셨죠. 그 분에 대한 정치권의 뒷담화입니다. 로그인해서 잠금 해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가 28일 오전 광주 광산구 송정매일시장에서 열린 ‘검찰독재 야당탄압 규탄연설회’에 참여해 발언하고 있다. 2022.12.28. 뉴시스
“북한 무인기가 휴전선을 넘어서 서울 인근까지 비행했는데 격추도 못 하고 다 되돌아간 것 같습니다. 정말 ‘안방 여포’가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달 28일 광주광역시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북한 무인기 영공 침공 사태에 대해 핏대를 올리며 윤석열 대통령을 ‘안방 여포’라고 비난했습니다.
안방 여포(‘방구석 여포’라고도 함)는 자기 집 안에서만 큰소리 떵떵 치는 사람을 삼국지 속 캐릭터인 여포에 빗대 부르는 인터넷 용어입니다. 주로 오프라인에선 제대로 말도 못 하면서 온라인상에서만 싸움박질하고 다니는 악플러를 지적할 때 많이 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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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28일 오전 제 51차 광주 현장 최고위원회의가 열린 광주 서구 치평동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을 찾아 발언하고 있다. 2022.12.28. 뉴시스
이 대표가 광주에 머물던 이날 오후 서울 국회에선 이 대표가 소속된 상임위원회인 국방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습니다. 무인기 사태와 관련해 여야가 군 수뇌부로부터 긴급 현안보고를 받겠다며 아주 모처럼 합심해서 만든 자리였습니다. 이 자리엔 이 대표를 제외한 여야 국방위원 전원(국민의힘 이헌승 위원장, 신원식 임병헌 성일종 한기호 의원, 민주당 김병주 김영배 설훈 송갑석 송옥주 안규백 윤후덕 정성호 의원, 정의당 배진교 의원)이 참석했습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청가(請暇·의회에 출석하지 못할 경우 미리 불참 사유와 기간을 적어 제출하는 것)를 냈으니, 무단 결석자는 이 대표뿐이었습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2.12.28. 뉴시스
이 대표는 왜 안 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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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대표의 국회 무단결석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 참여연대가 운영하는 ‘열려라 국회’ 사이트의 상임위 출석부에 따르면, 이 대표는 지난해 6월 보궐선거로 국회의원 배지를 단 이후 정기국회가 종료된 12월까지 총 17번 열린 회의(국정감사 포함) 중 7번만 출석했습니다. 출석률 41.18%로 상임위 ‘꼴찌’입니다. 12월 28일 긴급 현안 질의에도 불참한 것까지 포함하면 이 대표의 출석률은 38.89%로 더 떨어집니다. 같은 기간 이 대표를 제외한 다른 국방위 소속 의원들의 평균 출석률은 95%였습니다.
혹시 양보다는 질로 승부하는 스타일인가 싶어 그의 회의 석상 발언도 다 찾아봤습니다만, 그것도 아닌 듯합니다. 국감 기간을 제외하면 6개월 넘게 활동하는 동안 8월 1일 첫 회의 때만 질의를 했고, 두 번째 회의에선 신상발언을 한 게 전부였습니다. 그마저도 “빼곡한 일정 때문에 지금 바로 이석해야 한다“고 양해를 구하는 멘트였습니다.
당 대표라 상임위 활동이 쉽지 않다는 점은 인정합니다만, 같은 당 박홍근 원내대표나 여당 지도부와 비교해 보면 이 역시 비겁한 변명입니다. 아래 표 속 차이를 한 번 직접 비교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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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민주당 안방인 광주에서 윤 대통령더러 안방 여포라고 비판하기 전에 본인부터 국회에서 열리는 본업에 제대로 임했어야 합니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하는 기자들과의 백브리핑이나 즉석 질의응답 자리에선 침묵으로만 일관하면서, 자신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들과의 온라인 유튜브 방송에선 유독 활발한 그야말로 안방 여포 같습니다. 대체 누가 누구더러 안방 여포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