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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것과 얻은 것[이은화의 미술시간]〈243〉

입력 | 2022-12-01 03:00:00

존 싱어 사전트 ‘이저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1888년.


가슴골이 살짝 드러나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두 손을 둥글게 모으고 서 있다. 존 싱어 사전트가 그린 이 인상적인 초상화 속 모델은 이저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19세기 후반 미국 보스턴에서 가장 유명했던 전설적인 미술품 컬렉터다. 당시 여성으로는 드물게 부와 명성, 업적까지 쌓았는데도 왠지 눈은 슬퍼 보인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사전트는 미국 화가지만 생애 대부분을 파리와 런던 등 유럽에서 활동했다. 초상화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데다 훌륭한 매너와 완벽한 프랑스어 구사력 덕에 부유층 고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가 가드너의 초상화를 그린 건 첫 보스턴 방문 때였다. 화가는 48세 중년 부인의 애틋한 눈빛과 표정, 무엇보다 모래시계 같은 몸매를 강조해 그렸다. 관능적이면서도 슬퍼 보이는 모습이다. 아마도 이는 모델의 삶을 그림에 투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뉴욕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가드너는 20세에 사업가 잭 가드너와 결혼한 후 보스턴에 정착했다. 행복한 생활도 잠시, 연이어 아이를 잃으면서 우울증에 걸렸다. 결혼한 지 다섯 달 만에, 첫아기를 사산한 데 이어 3년 만에 가진 아들까지 두 돌이 되기 전에 죽었다. 몇 달 후 친구였던 시누이마저 사망하자 또 한 번 유산했다. 상실의 슬픔에 완전히 잠식당해 있던 무렵, 부부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유럽과 러시아 등지로 여행을 떠났다. 가드너는 여행을 하며 미술에 눈을 떴고 렘브란트, 페르메이르 등의 작품을 사들였다. 미술은 구원이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면서 그의 구멍 난 인생도 예술로 비로소 충만해졌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 가드너는 자식을 잃었지만 예술과 명성을 얻었고, 그녀가 평생 모은 작품으로 채워진 집은 미국 최초의 사립 미술관 중 하나로 지금도 보스턴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