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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가려는 아프리카-중동 난민들, 이집트로 몰려든다[글로벌 현장을 가다]

입력 | 2022-10-20 03:00:00

10일(현지 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한 수단 난민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이 학교는 학생과 교사 모두 수단 난민이다. 학생에게는 교육, 교사에게는 일할 기회를 주기 위해 국제자선단체 등의 도움으로 2015년 설립됐다. 카이로=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

강성휘 카이로 특파원


10일(현지 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한 수단 난민학교를 찾았다. 이집트 남부와 국경을 맞댄 수단에서는 이슬람교를 믿는 북부 아랍계와 기독교를 믿는 남부 흑인계가 오랜 내전을 벌여 왔다. 2011년 흑인계가 주축인 남수단이 독립했음에도 두 나라 모두에서 양측의 대립과 충돌이 계속돼 아직도 난민이 대거 발생하고 있다.

수단 난민의 대부분이 이집트로 몰려든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8월 기준 이집트에는 각각 5만8579명, 2만3042명의 수단 및 남수단 난민이 있다. 각국 난민 중 시리아(14만4167명)에 이어 2, 3번째로 많다. 이에 카이로 곳곳에 수단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난민학교가 존재한다.》



난민 출신으로 현재 이 학교 교사로 일하는 제임스 오쿠 씨(43)는 “부모님이 아랍계에게 살해되는 장면을 직접 본 학생도 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이집트에 온 후에도 아랍어를 쓰는 사람에 대한 반감이 심해 힘들어하는 그 학생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고도 했다.

학생 220여 명의 어려운 형편을 알면서도 학교는 임차료 등 비용 때문에 1인당 월 370이집트파운드(약 2만7000원)의 학비를 받는다. 이를 내지 못해 중도에 자퇴하는 학생도 많다. 가나에서 왔다는 12세 소년 캉은 “학비를 내기 위해 밥을 굶는 친구도 있다. 배는 고파도 공부하고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좋아 학교에 오는 것”이라고 했다.
난민 인정에 최소 10년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이집트 내 난민은 28만8701명. 대부분 시리아, 수단, 남수단 3개국 출신이다. 난민 신고를 하지 않은 채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지내는 사람은 이보다 훨씬 많다. 일각에서는 시리아에서 온 난민만 최소 5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이 불법 체류자로 지내는 이유는 이집트 또한 세계 많은 나라와 마찬가지로 난민 지위를 인정해주는 데 상당히 인색하기 때문이다. 유엔난민기구가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등 난민이 많은 대도시에 사무실을 마련해 이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난민 증가 속도에 비해서는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2004년 이집트에 온 오쿠 씨는 난민 신분증을 취득하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는 “먹고살기 힘든 난민들은 이 긴 시간을 기다릴 수 없다. 그래서 요즘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난민 신분 취득을 포기한다”고 전했다.

내전을 피해 2013년 시리아를 탈출한 오마르 엘하티 씨(53)도 9년이 흐른 지금까지 난민 지위를 얻지 못했다. 그는 “이집트보다 사정이 나은 유럽으로 가려면 반드시 난민 신분증이 필요한데 언제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원래도 어려웠던 유럽행이 더 어려워진 것도 걱정이라고 했다.

카이로 인근 신도시에 사는 엘하티 씨의 가족은 총 8명.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은 23세인 그의 장남이 공장에서 하루 14시간씩 일하며 번 월급 3000이집트파운드(약 22만 원)다. 이 중 약 절반인 1300이집트파운드가 집세로 쓰인다. 남은 1700파운드로 8명이 생활하려면 그야말로 빠듯하다. 엘하티 씨는 한창 일할 나이지만 전 세계 경제를 강타한 고물가와 경기둔화로 일용직 자리도 구하기 쉽지 않아 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녀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지 못한 것 역시 매우 가슴 아프다고 했다. 8세 때 이집트에 온 그의 막내딸은 이후 9년간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레바논 등 시리아와 국경을 맞댄 나라에는 자체 상수도 시설, 학교 등을 갖춘 난민 캠프가 있지만 이집트에는 이런 캠프가 없는 탓이다. 엘하티 씨는 “한창 공부해야 할 나이의 자녀가 돈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을 보는 부모 마음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목숨 건 유럽행
엘하티 씨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난민은 이집트를 중간 정착지로 여긴다.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유럽. 주요국의 소득 수준이 중동 및 북아프리카보다 훨씬 높고 보건, 교육 인프라 등 각종 사회안전망도 잘 구비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다. 같은 허드렛일을 해도 이집트에서 일할 때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고 자녀들의 교육 여건 또한 좋다는 점을 든다.

BBC 등이 14일 전한 튀르키예 내 난민 상황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있는 난민들이 얼마나 비참한 환경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그리스 경찰은 튀르키예 국경지대에서 92명을 구출했다. 대부분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출신으로 모두 벌거벗은 상태였다.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리스 정부는 튀르키예 당국이 난민들에게 잔혹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며 “문명의 수치”라고 규탄했다.

카이로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구호활동가는 “현재 삶이 워낙 힘들고 열악하다보니 대부분의 난민이 유럽을 일종의 이상향으로 여긴다”고 전했다. 오쿠 씨는 “난민 출신인 동료 교사 중에는 20년 넘게 유럽 입국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목숨을 담보 삼아 유럽행을 시도한다. 지난달 말에는 레바논에서 출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법 이민 선박이 지중해에서 침몰해 어린이 24명을 포함해 100여 명이 숨졌다. 대부분 시리아, 팔레스타인 난민이었다.

이 와중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좁았던 유럽 입국길은 더 험난해졌다. 또 최근 이탈리아, 스웨덴 등에서 극우 정당이 속속 집권하거나 득세하면서 유럽으로 가는 길이 아예 차단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달 25일 총선 승리로 조만간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총리에 오를 것이 확실시되는 조르자 멜로니 극우 이탈리아형제들(Fdl) 대표는 여러 인터뷰에서 난민의 주요 유입 통로인 남부 해안을 봉쇄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천신만고 끝에 유럽에 당도해도 전쟁 장기화에 따른 각국의 경제난, 반(反)이민 정서 등으로 정착이 쉽지 않다. 노르웨이 인권단체 ‘NRC’는 우크라이나 전쟁 및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늘면서 아프리카와 중동 난민에게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적지 않은 유럽 국가들은 피부색과 종교가 다른 중동 및 북아프리카 난민보다 백인 기독교도인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온정적인 편이다. 이로 인해 이미 박해받고 있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 난민들이 더 소외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오쿠 씨는 “유럽에 간 수단 난민 중 일부는 현지에서의 생활고와 핍박을 견디지 못해 결국 수단으로 되돌아오기까지 한다”고 전했다. 극단적으로 말해 난민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귀국해 총에 맞아 죽는 것’과 ‘유럽으로 가는 밀입국 배에서 죽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성휘 카이로 특파원 yo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