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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반도체칩 수입대금” 속여 9000억 해외송금… 은행지점장 개입

입력 | 2022-10-07 03:00:00

비트코인 이용 신종환치기 9명 기소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뒤 금이나 전자부품을 수입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약 9300억 원을 해외로 빼돌린 일당 9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가상화폐가 국내 거래소에서 해외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을 노리고 해외에 거주하는 공범들로부터 가상화폐를 넘겨받은 뒤 현금으로 바꿔 송금하며 차액을 챙기는 방식을 썼다.

가상화폐를 이용한 신종 환치기 범행이 적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불법송금 과정에서 시중은행 지점장이 수상한 외환거래를 본점에 보고하지 않고, 검찰 수사 상황을 알려주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한 사실도 확인됐다.
○ 무역대금 위장해 일본, 중국에 송금
대구지검 반부패수사부(부장검사 이일규)는 일본으로 4960억여 원을 송금한 A 씨(39) 등 4명과 중국으로 4390억여 원을 송금한 B 씨(33) 등 4명을 특정금융정보법 및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이 8명 중 7명은 구속됐다. 또 이들의 범행을 돕고 대가로 2500만 원 상당의 현금과 상품권을 받은 혐의로 시중은행 전 지점장 C 씨(52)도 구속 기소했다.

A 씨 등 4명은 지난해 9월부터 올 6월까지 일본에 있는 공범들로부터 총 3398억여 원어치의 비트코인을 넘겨받아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국내 거래소 4곳을 통해 매각했다.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해 270억 원 이상의 차익을 본 이들은 무역법인을 세운 뒤 반도체칩과 금 수입 대금을 일본으로 보내는 것처럼 은행에 가짜 서류를 제출하고, 4957억 원을 일본으로 보냈다. A 씨 등은 대가로 47억여 원의 수수료를 챙긴 뒤 외제차와 명품을 구입하며 국내에서 호화 생활을 했다.

또 중국계 한국인 B 씨 등 4명은 같은 기간 중국에 머무는 공범들로부터 3500억여 원어치의 비트코인을 넘겨받은 뒤 국내거래소를 통해 매각했다. 역시 무역법인을 차린 B 씨 등은 전자부품 수입대금을 보내는 것으로 가장해 총 4391억여 원을 중국으로 보냈다. 검찰은 A 씨와 B 씨 일당이 별개 조직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범행은 우리은행 지점장이었던 C 씨의 비호 덕분에 가능했다. 그는 A 씨와 B 씨 일당이 제출한 허위서류를 그대로 접수했고, 은행 자체 시스템을 통해 ‘의심거래 경고’ 통보를 받았음에도 이를 본점에 보고하지 않았다. 검찰의 계좌추적 영장이 은행에 접수됐다는 사실을 A 씨 일당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C 씨는 범행을 도운 대가로 현금 2400만 원과 상품권 100만 원을 받았다. C 씨가 지점장이었던 은행 지점은 해외 송금수수료 약 21억 원을 챙겼다.
○ 수천억 원대 비트코인 출처도 수사 중
검찰은 단순한 환치기 범행이 아니라 부정한 자금을 세탁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최초 자금 출처 등을 확인 중이다. 일본에 있는 한국 국적의 공범 3명, 중국으로 도주한 중국인 공범 5명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뒤 국내 송환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은 또 이들이 보유한 고가 외제차 3대(3억 원 상당)와 콘도 분양권(2억6000만 원 상당) 등 12억 원 상당의 재산을 추징 보전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의 행위는 외환관리시스템에 심각한 부실을 초래하고 무역수지를 왜곡하는 중대한 범죄”라며 “시중은행을 통해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아무 제지 없이 수천억 원이 불법 송금된 만큼 외화 송금 시스템 점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와 별개로 현재 서울중앙지검 국제범죄수사부(부장검사 나욱진)도 가상화폐를 통해 유입된 10조 원가량이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등을 통해 불법으로 해외 송금됐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대구=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