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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위기 때 ‘약’이 된 술[전염병과 예방의 역사/명욱]

입력 | 2022-08-31 03:00:00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코로나19가 창궐한 지 벌써 3년째다. 전 세계 6억 명이 넘게 걸린 어마어마한 전염병이다. 인류의 코로나 극복 과정에서 일등공신은 뭘까? 첫 번째는 백신이지만 두 번째는 아마도 알코올이 될 것이다. 소독제의 주원료가 대부분 알코올이기 때문이다. 알코올 정제 기술이 발달하기 전, 인류는 술을 소독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역병의 역사는 술과 약물의 진화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묘한 공생 관계다.

인간이 약술을 사용했다는 기록은 메소포타미아 문명 때부터 보인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고대 그리스다. 그 시초는 바로 서양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기원전 4∼5세기로 유명한 ‘아테네 역병’이 돌 때였다.

히포크라테스는 이때 전염병에 대해 최초로 과학적 격리와 방역을 진행했다. 열이 있는 대장간 주변에서는 전염병이 덜 퍼진다는 데 착안해 소나무에 불을 놓아 도시 전체를 방역하였다. 당시 소독제로 쓴 것이 와인이었다. 와인에 다양한 약재를 넣어 약용 술을 만들기도 했다. 알코올은 수분에 비해 삼투압이 높아 약재의 성분을 잘 녹여냈고, 무엇보다 섭취하게 되면 물보다 체내 흡수가 빨랐다. 알코올 자체가 이뇨 작용, 해열제의 역할도 했다. 변변한 약이 없었던 당시로는 최선이었다.

술을 약으로 활용하려는 피나는 노력…. 이는 술 자체의 진화도 촉진했다. 위스키, 보드카, 코냑, 소주 등 증류주의 발전이다. 무슨 얘기일까. 히포크라테스는 인체의 구성이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의 네 가지로 되어 있다는 사체액설(四體液說)을 주창했다. 이를 근간으로 건강 상태를 분석했다. 사체액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거쳐 이슬람 지역으로 전파돼 연금술의 기원이 된다. 이는 사원소(四元素)에 온, 냉, 건, 습을 더해 물질을 바꾸겠다는 것인데, 술에도 열을 가하고 얼리고 말리며 습하게 하는 실험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이로써 알코올(78도)과 물의 끓는점(100도)의 차이가 알려졌고, 알코올을 분리함에 따라 증류주가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탄생한 증류주는 훗날 다시 약으로서 톡톡히 기능한다. 중세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이 병의 청정 지역으로 불린 폴란드에 독특한 문화가 있었다. 증류주로 겨드랑이와 팔, 손, 몸 등을 소독하는 것이었다. 식기와 가구 등 가족의 손이 자주 닿는 곳도 마찬가지였다. 폴란드에서 소독제로 발전한 증류주는 이후 보드카로 성장하게 된다. 보드카의 어원은 지즈데냐 보다(Жизденя вода)다. 우리말로 하면 ‘생명의 물’이다.

인간의 건강한 삶에 청결과 소독은 필수 불가결하다. 술은 소독제였고, 때로는 우울함을 잠시 잊게 하는 심리적 진통제로도 기능했다. 그러나 세상만사 과유불급. 알코올 의존은 심신의 건강을 모두 해친다. 더욱이 지금은 훌륭한 소독제와 과학적인 약이 넘쳐나는 세상 아닌가.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