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목욕탕/야스다 고이치, 카나이 마키 지음·정영희 옮김/384쪽·1만8000원·이유출판
“일본인에게는 이름을 가르쳐 주고 싶지 않아요. 미안해요.”
2019년 9월 부산 동래구에 있는 한 온천에서 몸집이 자그마한 한국 할머니는 일본인 저자들에게 대뜸 이렇게 쏘아붙였다. 당시 한국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로 반일 감정이 극에 치달았던 시기. 할머니는 “한국은 일본에게 고약한 일을 당했다. 나쁜 짓을 했다면 사과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며 화를 냈다.
저자들은 “일본 정부 때문에 한국인이 화가 나는 건 당연하다. 역사를 왜곡하거나 잊은 척하는 것은 죄가 무겁다”고 말했지만 할머니는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미안하다”고 말하는 할머니의 배려는 이들이 역사의 상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일본 사무카와에 있는 최초의 공중목욕탕 ‘스즈란탕’에 갔을 때도 두 사람은 숨겨진 일제의 그림자를 마주한다. 이 지역에 일제가 독가스를 생산하던 공장이 있었다는 얘기를 우연히 듣는다. 어렵게 사료를 뒤져 징용으로 끌려온 이들의 회고록을 찾아내 전쟁의 민낯을 파고든다.
태국 힌닷 온천은 정글에서 노천탕을 즐기는 천혜의 휴양지. 하지만 이 온천이 일제가 지은 군용시설이란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온천을 오고 가는 철도도 그 땅을 침략하기 위해 일제가 건설했다. 우연히 다른 여행객이 “일본인이냐”고 물었을 때, 무심코 “일본이라 죄송하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국인에게 저자들은 참 고마운 존재다. 이런 이들만 있다면 양국 갈등은 진작 해소됐을 터. 하지만 혐한 서적이 일본 서점을 뒤덮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또다시 씁쓸해진다. 그래도 두 저자가 “저항하는 태도를 지켜 나가자”고 다짐하는 모습에 진한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