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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중심지, 프랑스 파리가 아니고 OO이다?! [영감 한 스푼]

입력 | 2022-08-06 11:00:00

5년에 한 번 열리는 미술축제,
카셀 도큐멘타




안녕하세요, 김민 기자입니다.

여러분은 ‘예술 중심지’라고 할 때 어떤 도시가 떠오르시나요? 일반적으로는 프랑스 파리가 여전히 예술의 도시라는 인상을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미국 뉴욕을 떠올릴 분도 계실 테고요. 그리고 ‘독일’을 떠올린 분 계신가요? 독일을 생각하셨다면 미술계에 지금 몸담고 있는 분일 거라고 거의 확신합니다.

네,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미술의 역사를 쓰는 중심지는 19세기 이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왔습니다. 첫 번째는 인상파가 활발했던 19세기 말의 프랑스 파리이가 중심이었던 게 맞습니다.

그 다음 20세기부터는 미국이 문화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뉴욕이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로 새로운 중심지로 떠올랐죠. 그리고 냉전적 사고방식을 의심하기 시작한 지금은 독일이 미술사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만든 요인 중 하나, 독일의 조용한 도시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입니다.

아직도 많은 분에게 생소할 이 현대미술 전시는 열릴 때마다 전 세계 100만 명이 찾고 있습니다. 올해도 열리고 있는 카셀 도큐멘타15에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박주원 님이 최근 다녀오셨는데요. 오늘은 박주원 큐레이터에게 직접 들어본 카셀 도큐멘타 현장 이야기를 준비해보았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요셉 보이스의 후예들이 카셀에 만든 새로운 세상테라코타 프렌드십 - 우정에 관하여


1. 독일 카셀에서 1955년 나치 시대에 금지되었던 예술을 보여주면서 ‘시대를 증언하는 예술의 역할’ 을 처음 제시했다.

2. 그 후 1982년 도큐멘타 전시에서 현대미술의 거장 요셉 보이스가 ‘7000그루 오크나무’를 선보이며 미술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3. 2022년 열리는 도큐멘타에서는 인도네시아의 예술 그룹 루앙루파가 감독을 맡아, ‘친구’들을 불러 각자 알아서 전시를 만들게 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미술전을 실험하고 있다.

○ 참여작가, 작품 수도 잘 모르는 예술감독?!

카셀 도큐멘타15에서 ‘테라코타 프렌드십’ 포럼을 진행하는 참여 작가와 박주원 큐레이터.




박주원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학예연구사)는 ‘MMCA 아시아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해왔고, 2021년 현대차 시리즈 <문경원 & 전준호 - 미지에서 온 소식>, 광주비엔날레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 등의 전시 기획에 참여했습니다. 그녀의 전시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담론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장’으로서의 미술관에 대한 고민이 자주 드러나는데요. 그런 점에서 이번 카셀 도큐멘타15 전시의 주제와도 연결되는 점이 무척 많았을 것 같았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김민(김): 오랜만이에요! 2021년 광주비엔날레 전시 준비 하셨을 때 뵙고, 그 이전에 ‘아스거 욘’ 전시도 인상깊게 보았는데요. 이번엔 어떤 일로 카셀에 다녀오셨나요.

박주원(박): 네, 카셀 도큐멘타의 참여 작가인 자티왕이 아트팩토리와 ‘아시아 프로젝트’ 세 번째 프로그램으로 메타버스 전시를 만들고, 포럼을 열었어요. ‘테라코타 프렌드십 - 우정에 관하여’라는 제목입니다.

김: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직접 본 올해 도큐멘타 분위기는 어땠는지 궁금해요.

박: 예전 도큐멘타나 베니스 비엔날레를 가면 서구 중심으로 감독과 참여 작가가 정해지잖아요. 그래서 ‘그들은 우리를 모른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인도네시아 예술 그룹 루앙루파가 감독이 되고, 그들이 아는 관계에 있는 사람을 부르다보니 저도 아는 사람이 많았어요. ‘친구들’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김: 루앙루파와도 작업한 적이 있으시죠?

박: 네. 2018년 초청 전시를 했는데 그 때 당황했었어요. 가령 예산이 1000만 원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 돈에 상응하는 작품이나 조각 등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만드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루앙루파는 10~15명 되는 사람이 그 돈으로 전부 한국에 오겠다고 하는거에요.

김: 그럼 예산이 부족하지 않나요?

박: 굉장히 빠듯해서 짠내나게 머물렀어요. 일주일간 체류하며 한국에 있는 작가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겠다고 했어요.

김: 그래서 뭘 했나요?

박: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서울박스’를 플리마켓과 워크샵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예산이 부족해서 딱 하루만 진행했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워크샵은 두 사람이 짝을 지어 얘기하고 서로의 배울점을 알아낸 다음, 돌아가면서 한 명이 다른 사람의 선생님이 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냥 무작위로 미술관에 온 사람들이 나이나 직업에 상관없이 녹아들어서 인상적이었는데요. 그렇게 하니 아저씨와 아이도 대화가 되더라구요.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녹아드는 ‘장’을 만드는 것이 루앙루파의 방식이에요.

Eva Kotatkova, Daydreaming Workstation, 2022, installation view, Documenta 15. Photo: Frank Sperling; courtesy Documenta



김: 이번 카셀 도큐멘타의 방식도 비슷한 점이 많아 보였어요.

박: 맞습니다. 루앙루파는 예술감독을 수락하면서 전시가 열리기 전 까지 몇 년동안 카셀에 머물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터전을 만들고, 지역 사람들에게 녹아들려고 한 거죠.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작품을 만드는게 아니라 ‘커뮤니티’를 만드려고 한 거에요.

김: 그래서 루앙루파를 인터뷰한 외신 기자가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작품수가 몇 개냐”고 하니 “모른다”고 하고, “참여작가는 몇 명이냐?”고 묻자 또 “모른다”고 했다고요.

박: 네. 루앙루파가 카셀에 머물면서 터전을 만들고, 그 다음에는 ‘룸붕’(친구)이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의 전 세계 작가들을 불러서 그들이 알아서 전시를 구성하게 만들었거든요. 도큐멘타 현장 가운데에 ‘키친’이라는 곳이 있고 그곳을 드나들며 모였다가 각자 작업을 했다가 하는 풍경이 연출됐어요.

김: 말 그대로 ‘그들만의 세상’을 카셀에 만든거네요.
○ 요셉 보이스 차 한 잔 하실래요…?
김: 루앙루파를 보면서 저는 독일 현대미술가 요셉 보이스(1921~1986)가 떠올랐어요. 보이스가 독일 뒤셀도르프의 대학에서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강연을 열고, 그 칠판을 작품으로 남겼잖아요. 그런 식으로 사회에 있는 통념과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는 삶 자체가 예술이라면서요.

박: 네, 보이스의 영향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죠. 요셉 보이스 하니 재밌는 광경이 떠올랐어요. 제가 함께 작업한 자티왕이 아트팩토리의 전시장에서 ‘요셉 보이스 차’를 나눠줬거든요.

요셉 보이스 차를 나눠주고 있는 도큐멘타 15 현장. 사진: 박주원 큐레이터



김: 요셉 보이스 차라니…!! 뭘로 만든 걸까요

박: 요셉 보이스가 1982년 카셀 도큐멘타에서 ‘7000그루 오크나무’ 설치 작업을 했잖아요.

김: 네. 부제가 ‘도시 행정 대신 도시 숲 만들기’였죠. 미술관 앞에 큰 현무암 7000개를 쌓아 놓고, 나무 하나가 심어질 때마다 그 현무암을 옆에 세우는 프로젝트고, 자원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5년 만에 7000그루 나무를 세웠죠.

박: 그 때 심었던 나무가 아직도 카셀에 남아 있고, 그 나무의 잎을 따서 말려서 차로 만든 거에요! 자티왕이 아트팩토리 작가 중 한 명이 차를 우려서 사람들에게 나눠줬고, 그러면서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보이스의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됐죠.

김: 정말 의미심장한, 뜻깊은 장면이네요.

박: 네. 비록 거대한 조형물은 아니더라도 살아있는 나무가 상징성을 갖고, 그 나무를 통해서 보이스의 정신이 이어져 내려오는, 그 정신을 마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무언가를 느껴서 인상 깊었습니다.

Jatiwangi art Factory, Terracotta Embassy, 2021¤ongoing.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Image courtesy of Documenta 15, Kassel. Photo by Frank Sperling.



김: 자티왕이 아트팩토리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박: 자티왕이 아트팩토리(JaF)는 2005년 시작된 예술 그룹이에요. 이들이 활동하는 인도네시아 자티왕이 지역은 동남아시아 최대 테라코타 타일 생산지였어요. 그런데 이 곳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협동하는, 우리로 보면 농촌같은 삶의 방식을 채택해서 예술 활동을 이들은 시작했어요. 테라코타를 재료로 새롭게 상상한 도시의 모습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테라코타 프렌드십-우정에 관하여》, 2022, 메타 파빌리온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01



김: 그리고 그 자티왕이와의 협업으로 메타버스 전시를 만든거죠?

박: 네. 우선 자티왕이 아트팩토리의 초청으로 시작되어서, 서울과 카셀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메타버스를 택했고요. 테라코타로 만든 도시 위해, 한국의 작가 4명이 ‘우정’을 주제로 각자 구성한 파빌리온 4곳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 참여 작가와 내용을 조금 소개해주세요.

박: 이강승, 듀킴, 안유리, 워크스(이연정, 이하림)이 참여했습니다. 이강승 작가는 탑골공원을 배경으로 그 속에 거대한 선인장을 놓았는데요. 노년 세대와 한국의 퀴어들이 드나드는 공간이라는 탑골공원의 특성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또 듀킴 작가는 종교적 도상에서 사용되는 손짓과 ‘보깅’ 댄스에서 사용되는 손짓을 교차해서 자신만의 ‘대안 사원’을 만들었구요.

김: 마지막으로 카셀 도큐멘타를 찾고 싶은 독자분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박: 이번 전시가 호불호가 강해요. 전통적인 전시 형태와 달라서 낯설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루앙루파의 본질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무형의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에요. 만약 본질을 알고 싶다면 전시만 구경하기보다, 그곳에서 열리는 워크샵 1-2개를 참여해보시길 권합니다! 루앙루파가 말하는 ‘룸붕’(친구)이 뭔지, 전시로 전달하려는 게 뭔지 바로 느낄 수 있을 거에요.


전시 정보

서울, 그리고 카셀 - 우정에 관하여

2022.7.27 ~ 2022.9.25

카셀 도큐멘타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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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