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7/에드워드 애슈턴 지음·배지혜 옮김/412쪽·1만5000원·황금가지
저자는 “2019년 말 초고 완성 뒤 출판 계약도 안 한 상태에서 에이전시가 ‘플랜B’에 원고를 넘겼다. 플랜B는 봉준호 감독이 ‘미키7’을 스크린에 소환할 적임자라 여겼고 봉 감독은 원고를 받자마자 차기작으로 정할 정도로 맘에 들어 했다”고 전했다.황금가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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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에 도발적인 가정을 던져보자. 당신은 어젯밤 11시 잠이 들며 그날 하루의 기억을 컴퓨터에 올리고 사망했다고. 어제의 당신은 ‘당신1’이라고. 그리고 오늘 아침 7시에 새로운 ‘당신2’가 그 기억을 내려받은 뒤 새로 태어났다고. 그렇다면 당신1과 당신2는 똑같은 사람인가, 다른 사람인가.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정말 어제의 당신과 같은 이라 확신할 수 있나.
위 사진은 왼쪽부터 봉 감독과 주인공을 맡은 배우 로버트 패틴슨.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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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왜 봉 감독이 이 작품을 영화의 원작으로 택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뭔가 블랙코미디적인 설정이 흥미로운데다 알게 모르게 묻어나는 계급 담론이 짙기 때문이다. 사실 미래사회라고 누구나 복제인간의 삶을 선호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 끔찍한 굴레를 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빚더미에 깔려 돈이 필요했던 미키는 어쩔 수 없이 힘든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복제인간에 지원했다.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양자물리학을 가르치는 과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국내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이나 계급 갈등에 대해 봉 감독과 비슷한 관점과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하층민의 삶이 서글프고 고단한 건 바뀌질 않나 보다. 봉 감독은 또 이 독특한 소설을 어떻게 영상으로 풀어낼는지. 요즘 국내 웹툰이나 웹소설에서는 과거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는 ‘회귀물’이 대세인데, 삶이 반복되는 게 정말 행복을 보장할까. 잠깐, 혹시 우리는 지금 ‘n회 차’ 인생을 살고 있나. 괜스레 주변 사람들을 실눈 뜨고 쳐다보다 머리만 긁적거렸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