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TREND WATCH]
시니어 합창단 ‘뜨거운 씽어즈’가 5월 6일 열린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축하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뉴스1
“데뷔 57년 만에 영화 ‘아이 캔 스피크’로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을 받았습니다. 그때 나문희의 전성시대라는 말을 들었어요. 제 나이가 일흔여덟이었는데 말이죠. 넘어지고 일어서고 좌절하고 성장하면서 버티고 또 버틴 거 같아요. (중략) 오늘,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든둘에도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1941년생 배우 나문희가 JTBC 예능 프로그램 ‘뜨거운 씽어즈’에서 한 말이다. ‘뜨거운 씽어즈’는 시니어 배우들의 합창 도전기를 담은 프로그램. 나이 총합 990살, 연기 경력 500년에 이르는 참가자들이 100일 동안 훈련을 거듭한 끝에 영화 ‘위대한 쇼맨’(2017) 주제곡 ‘This is me’를 라이브로 선보이는 모습을 담아 뭉클한 감동을 줬다. 이 프로그램에는 프로 뮤지컬 배우, 천둥 같은 성량을 자랑하는 가수 출신들도 참가했다. 하지만 대중에게 가장 깊은 울림을 준 주인공은 나문희, 그리고 그보다 네 살 더 많은 배우 김영옥이었다. 후배들이 목청 좋게 합창곡의 하이라이트를 불러 젖힐 때 백발이 성성한 김영옥은 이렇게 읊조린다. “힘에 겨울 땐 고갤 떨구렴. 겁에 질리면 눈을 감으렴. 네 눈물, 그 아픔 모두 너의 노래야.” 한 음절 한 음절 정성스럽게 건네는 그의 내레이션에 객석에 앉은 기라성 같은 스타들 눈이 하나같이 촉촉이 젖었다.
잔소리하는 대신 경청하는 시니어의 등장
국내 최고령 현역 배우 김영옥이 등장한 예능 프로그램은 또 있다. 5월 종영한 tvN ‘조립식 가족’. 혼인·혈연 등으로 엮이지 않은 젊은이들이 한집에 모여 사는 모습을 담은 이 프로그램에서 김영옥은 메인 진행자로서 젊은이들과 소통했다. 그는 노인이라면 흔히 할 것으로 예상되는 질문, 예를 들어 “혼기가 꽉 찼는데 왜 결혼할 생각 안 하고 친구끼리 사느냐”라든지 “오래 사귀었는데 동거 그만하고 결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같은 뻔한 말을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뭔가 조언하고 간섭하는 대신 각각의 이유로 한 지붕 아래 모여 사는 청년들의 새로운 주거 문화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성의껏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많은 시청자의 찬사를 받았다.
영화 ‘코다’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은 청각장애인 배우 트로이 코처(왼쪽)가 시상자 윤여정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윤여정을 대중 앞에 불러낸 나영석 PD는 2013년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를 통해 이순재·신구·박근형·백일섭 등 당대의 노배우를 핫한 예능의 주역으로 ‘소환’했던 시니어 예능 선두 주자. ‘꽃보다 할배’는 “노인이라면 모름지기 어떠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부수고 그들도 여전히 개성 강한 존재임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약 10년의 세월이 흐른 요즘 시니어 예능의 관심사는 세대 간 소통과 화합이다. 끝없는 도전과 나이를 초월하는 경청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부상한 이유도 여기 있다. 최근 각광받는 시니어 스타들은 하나같이 한참 어린 후배들과 보조를 맞춰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고, 손자뻘 젊은이와 기꺼이 고민을 나누며, 꿈에도 경험한 적 없을 법한 새로운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들여다본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김윤정 프리랜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