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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100년 만에, 이론에서 실재가 되다[세상을 바꾸는 과학/윤성철]

입력 | 2022-06-27 03:00:00

천문학자가 본 ‘블랙홀의 세계’



‘사건지평선망원경(EHT)’ 국제공동연구팀이 지난달 12일 공개한 우리 은하 중심부의 초대질량 블랙홀 모습(위쪽 사진). 가운데 검은 부분은 블랙홀이 빛을 가려 만든 그림자이며 고리의 빛나는 부분은 블랙홀의 중력에 의해 휘어진 빛이다. 이번 연구에 사용된 전파망원경 중 하나인 칠레 아타카마사막의 ‘알마(ALMA)’. 사진 출처 유럽남방천문대(ESO), 유럽우주국(ESA)

윤성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블랙홀의 실제 이미지가 최근 포착됐다. 한국천문연구원, 경북대, 서울대, 연세대의 국내 천문학자들도 참여하고 있는 ‘사건지평선망원경(EHT·Event Horizon Telescope)’ 국제공동연구팀이 이루어 낸 성과다.

‘검은 구멍’이라는 뜻의 블랙홀은 중력이 매우 강한 물질이 만들어 내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그 중심의 중력이 너무나도 강해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외딴 곳에 블랙홀이 홀로 있다면 빛을 통해 그 존재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빛을 방출하는 물질이 블랙홀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흰 종이 한가운데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은 후 바라보면 어떻게 보일까? 종이 표면은 반사된 빛으로 인해 우리 눈에 하얗게 보이지만 구멍이 뚫린 곳에는 빛이 통과만 하고 반사되지 못하기에 검은 점으로 보일 것이다.

EHT 연구팀이 우리 은하 중심부에 있는 초대질량 블랙홀의 이미지를 얻은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이 블랙홀은 수소와 헬륨 등의 가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원반 형태의 이 가스는 전파 영역에서 밝은 빛을 방출하고 있다. 이에 빛이 방출되지 않는 가운데 영역인 블랙홀을 직접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번에 포착된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의 430만 배에 달한다. 하지만 이 블랙홀의 반경은 불과 2200만 km로 태양과 수성 사이의 거리인 3600만 km보다도 작다. 앞서 EHT 연구팀은 2019년에도 우리 은하에서 5300만 광년 떨어져 있는 ‘M87’ 은하의 중심에 있는 거대 블랙홀의 이미지를 포착한 적이 있다. 이 블랙홀은 질량이 태양의 65억 배에 달하고 반경은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의 무려 2000배에 달한다. 하지만 M87 은하의 전체 크기에 비하면 티끌보다 작은 점에 불과하다.

사실 이렇게 ‘작은’ 블랙홀을 보기 위해서는 해상도가 좋은 망원경이 필요하다. 해상도는 망원경의 크기가 클수록 높아진다. 지구 지름과 맞먹는 거대한 전파망원경이 있다면 지상에서 달 표면의 오렌지 한 개를 식별할 수 있는 정밀한 해상도를 구현할 수 있다. EHT 연구팀은 이를 위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여러 개의 전파망원경을 연결해 지구 크기에 해당하는 전파간섭계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런 가상의 거대한 전파망원경을 통해 마침내 블랙홀의 이미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지난해 12월 우주로 보낸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 외계 생명체에 대한 실마리를 포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블랙홀의 존재는 이미 100여 년 전인 1915년 독일의 수학자 카를 슈바르츠실트가 일반 상대성이론 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과정에서 예측한 것이었다. 그 이후 수많은 학자가 블랙홀 질량 및 각 운동량에 따라 블랙홀 주변의 물리적 환경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연구해 왔다.

이번 관측은 우리 은하 중심의 거대 블랙홀의 특성을 깊이 이해하고 일반 상대성이론의 다양한 예측을 정밀하게 검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를 통해 거대 블랙홀이 어떤 방식을 통해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우리 은하의 형성과 진화에 어떤 영향을 주어왔는지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블랙홀은 과학자의 대중 강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제다. 일상에서 볼 수 없는 기괴한 현상이기 때문일 듯하다. 블랙홀은 인류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이는 과학의 역할 및 우주 탐사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하기도 한다.

과학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다양한 경험적 현상을 자연법칙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험 세계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다. 전자로 인해 혹자는 과학이 고리타분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현상이 설명되면 더 이상 신비롭지 않기 때문이다. 무지개, 별, 생명 등 한때는 신성한 영역에 속했던 일들이 모두 과학의 이름으로 설명됐고, 세속화됐다. 누군가는 그 대가로 인류가 찬란한 과학기술 문명을 성취했기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신화와 판타지의 낭만을 여전히 그리워할 것이다.

하지만 과학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경험적 현상을 설명하고 이를 통해 실용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블랙홀의 예에서 볼 수 있듯 과학은 신화와 판타지 못지않게 우리의 마음을 뜨겁고 설레게 할 수 있다. 과학은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안내해 주기 때문이다.

천동설에서 벗어난 광활한 우주도, 중력에 의해 시공간이 휘어지는 일도, 빅뱅도, 블랙홀도 모두 한때는 판타지와 같은 일이었다. 과학은 ‘논리적 추론’, 그리고 ‘창의적 실험 및 관찰’이라는 두 개의 날개를 통해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왔다.

처음으로 망원경을 통해 천체를 관측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인류가 태양계 밖의 광대한 우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은 태양의 중력장으로 인해 별빛이 휘어지는 현상을 관측함으로써 일반 상대성이론을 판타지에서 현실 세계로 끌어왔다. 미국의 천문학자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의 우주배경복사 발견은 심지어 인간의 경험을 빅뱅으로까지 확장시켜 주었다.

EHT 연구팀이 포착한 블랙홀 이미지를 통해 이제 우리는 블랙홀도 경험하고 있다. 블랙홀은 여전히 신비하고 이해하기 어렵지만, 블랙홀을 체험하는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21세기의 우주 탐사는 또 다른 새로운 세상으로 인류를 인도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말 발사돼 화제가 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은 외계 행성에도 생명이 있다는 증거를 조만간 인류에게 안겨줄 가능성이 적지 않다. 21일에는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의 성공에 모두가 기뻐했다. 한국도 이제 주도적인 우주 탐사에 나설 준비가 됐음을 알리는 이정표였다. 이렇게 우리의 지평은 확장되고 있다.
윤성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