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대유자산관리 관계사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가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 사건 39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2013년 12월~2014년 1월 당시 증인이 검토한 결과는 수용 방식보다 환지 방식이 낫겠다고 개인적으로 결론을 내린 겁니까, 아니면 환지 방식이 적절하다고 결론을 놓고 일이 진행된 겁니까?”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 심리로 열린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 사건 37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성남도시개발공사 직원 한모 씨는 이 같은 재판부의 질문에 “후자로 진행됐다”고 말했습니다. 재판부가 “누가 말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상급자가 (증인에게) ‘환지 방식을 검토해보라’고 말한 건 맞느냐”고 묻자 한 씨는 “네”라고 답했습니다.
검찰은 당시 유 전 직무대리가 정 회계사와 남 변호사 등 기존 민간사업자들을 위해 사업 방식을 수용이 아닌 환지로 정하려 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당시 유 전 직무대리는 2009년경부터 환지 방식을 기반으로 한 민간개발을 추진해왔던 이들에게 2013년 4~8월 3억5200만 원의 뇌물을 받는 등 유착해있던 상태였습니다.
● “상급자 지시로 환지가 낫다는 결론 놓고 보고서 작성”
간단히 말해 수용 방식은 사업 시행자가 보상금을 주고 원주민의 땅을 사와서 개발을 진행하는 것이고, 환지 방식은 개발을 진행한 뒤 원주민에게 땅을 돌려주는 방식입니다. 2014년 5월 성남시가 공고한 ‘성남 대장동·제1공단 결합 도시개발구역지정 고시’ 문건. 사업 시행 방식이 “수용 또는 사용방식, 환지방식, 혼용방식 중 사업시행자 지정시 결정”으로 기재돼 있다.
한 씨는 정 회계사를 만난 이후인 2013년 12월~2014년 1월경 수용 방식과 환지 방식이 갖는 각각의 장단점을 검토한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당시 한 씨는 수용 방식이 적절하다고 생각했고 환지 방식을 택할 경우 제1공단 공원화가 어렵다고 생각해 정 회계사의 제안서 내용도 “실현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한 씨가 실제로 작성한 보고서 내용은 오히려 수용 방식의 단점과 환지 방식의 장점을 부각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재판부도 직접 이에 대해 “보고서를 보면 내용은 보기에 따라서는 환지 방식이 더 타당하다는 결론으로 보이기도 한다”며 “보고서 작성은 2014년 1월 무렵에 사업 시행 방식을 결정하지 않거나 추후 검토를 통해 수용 방식을 (환지 방식으로) 바꿀 수도 있게 하는 논거를 만드는 차원이었냐”고 했습니다.
● “환지 방식으로 하면 막대한 주민 피해 예상”
24일 열린 39차 공판에는 한 건설엔지니어링업체 전무이사 배모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이 업체는 성남시와 계약을 맺고 대장동 개발사업 지구지정과 개발계획 수립, 설계 등의 용역을 수행한 곳입니다. 당연히 사업 시행 방식을 환지로 할지 수용으로 할지도 이 업체의 검토 대상이었습니다.이날 배 씨는 “저희는 당연히 처음부터 수용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걸로) 알았다”고 증언했습니다. 배 씨는 “환지 방식으로 한다면 대장동 주민들이 1공단에 들어가는 비용을 모아서 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환지로 한다고 하면 주민 피해가 막대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1공단에는 공원이 조성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환지 방식을 택하면 1공단 주민들과 대장동 주민들이 대장동 땅을 서로 나눠 가져야 하는 상황이 된다는 겁니다.
2014년 1월 성남시의 ‘대장동·제1공단 결합 도시개발 구역지정 추진계획 보고’ 결재 문건. 사업시행방식이 “수용 또는 사용방식, 환지방식, 혼용방식 중 사업시행자 지정시 결정”으로 기재돼 있다.
이어 검찰은 배 씨에게 2014년 5월 성남시 공고처럼 “사업 시행 방식을 정하지 않고 ‘추후 결정’으로 (공고하는 건) 보편적이지 않으냐”고 물었습니다. 배 씨는 “대부분 결정하고 들어간다. 다만 주민들과의 (민원 등) 관계가 깔끔하게 정리된 것이 아니어서 추후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시행 방식을 적용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주민 등의 의견을 좀 더 들어보자는 취지에서 그랬을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검찰이 “어쨌든 일반적 경우는 아니냐”고 묻자 배 씨는 “네”라고 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실제 대장동 개발사업은 환지가 아닌 수용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도시개발법상 도시개발공사는 과반의 지분을 출자할 경우 토지 수용 권한을 갖는데, 이를 위해 2015년 6월 공사는 대장동과 제1공단의 결합개발을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법인 성남의 뜰에 과반의 지분(50%+1주)을 출자했습니다. 이에 따라 화천대유자산관리 측이 토지수용으로 땅을 헐값에 확보할 수 있게 하면서도 정작 이익을 배분할 때는 민간이 싹쓸이해 가져갈 수 있는 구조로 사업이 설계됐다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