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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학교가 킬링필드됐다”… 총기 참사 막을 행동 촉구[글로벌 포커스]

입력 | 2022-06-04 03:00:00

美 ‘학교 총기참사’ 끊이지 않는 비극
총기사건 가해자 미성년자 많아… 한해 400건 비극 이어져
미성년 피해자들 평생 고통… 총기규제 손놓은 美정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미국 남부 텍사스주 유밸디 주민이 1주일 전 교내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롭 초등학교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아 희생된 아이들을 보며 오열하고 있다. 이 주민 옆에서 한 여성이 위로하고 있다. 유밸디=AP 뉴시스


《1999년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미국 교내 총기 사건 사고는 현재까지 337건. 185명이 목숨을 잃었다.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거나 가까스로 생존한 후 트라우마에 노출된 학생은 31만 명에 달한다. 언제쯤 이 비극을 멈출 수 있을까.》

美반복되는 학교 총격의 비극


“무고한 생명들이 킬링 필드(killing field)로 변해 버린 교실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지금도 매일 많은 다른 학교들이 킬링 필드가 되고, 전장이 되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일(현지 시간) 대국민 연설에서 미국 학교에서 반복돼 온 총기 난사의 비극을 나열하며 “더 이상은 안 된다. 우리의 역할을 해야 할 때”라며 워싱턴 정계에 “이제는 제발 좀 뭐라도 하자”고 행동을 촉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호신용이 아닌 공격용 총기 판매 중단, 신원 조회 강화, 위험인물의 총기 구매를 제한하는 ‘적기법’ 등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보수층 반발을 의식한 듯 “이건 누구의 권리를 빼앗는 문제가 아니다. 이건 우리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자유에 대한 문제”라고 호소했다.

미국에서 교내 총기 난사 사고로 한꺼번에 많은 아이들이 생명을 잃는 참사는 지겹게 반복되고 있다. 특히 학내 참사는 피해자 대부분이 미성년자여서 피해자가 입는 고통의 강도와 깊이가 성인보다 훨씬 크다. 그런데도 총기 규제를 옹호하는 야당 공화당, 로비 단체 전미총기협회(NRA) 등은 ‘규제 강화’ 대신 ‘학내 무장경찰 배치’ 등 아전인수 격 대책만 강조해 총기 사건 사고를 근절시키기는커녕 악화시킨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 싸고 성능 좋은 무기 구입 쉬운 환경이 문제

등록된 총기만 약 4억 정, 2019년 기준 3만738명의 총기 사망자가 발생한 미국은 전 세계에서 총기가 가장 많고 총기 사고와 사망자 또한 가장 많이 발생하는 나라다. 2014년 이후 총기 난사 사건이 연간 400건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특히 전체 총기 사건 사고 중 교내 총기 사건 사고의 비중 또한 압도적으로 높다. CNN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에서는 288건의 학내 총기 사건 사고가 발생했다.

같은 기간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아프가니스탄 등 치안이 안 좋은 나라에서도 학내 총기 사건 사고는 한 자릿수에 그쳤다. 한 번에 수십 명의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교내 총기 참사는 최강대국 미국에서만 발생하는 지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라는 의미다.

미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 교내 총기 사건 사고는 지난해 42건으로 집계를 시작한 1999년 이후 역대 최고치였다. 올해 1∼5월에만 벌써 27건이 발생해 올해 전체로는 지난해를 추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 교내 총기 참사가 흔한 이유로 성능 좋은 총기를 적은 돈으로 편하게 구입할 수 있는 환경이 꼽힌다. 미 50개 주 대부분에서는 18세가 되면 누구나 총기를 살 수 있다. 가격이 비싸지도 않다. 그런데도 상당수 주는 21세 이상에게만 주류를 판다. ‘총기 구매 허용 연령이 주류 구매 허용 연령보다 세 살이나 낮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유밸디 참사의 범인 살바도르 라모스(18)가 사용한 무기는 ‘AR-15’ 소총이다. 전쟁터에서 살상용으로 사용하는 군용 돌격소총을 민간 버전으로 개량했다. 장전, 조준, 발사 등이 쉽고 무게가 가벼운데도 연속 발사가 가능해 인명 피해가 크다. 특히 싼 제품은 단돈 400달러(약 50만4000원)에 살 수 있어 총기 구매자가 몰려든다.
○ 미성년자 피해자에게 끼치는 장기적 영향

교내 총기 참사는 사건 발생 장소의 특성상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미성년자일 때가 많다. WP가 1999년부터 현재까지 교내 총기 사건의 가해자를 분석한 결과, 가해자의 중간 연령은 불과 16세였다. 대부분의 가해자가 법적으로 총기 구매가 가능한 18세 미만인데도 이들이 총기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뜻이다. 2016년 남동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타운빌 초등학교 총기 참사의 범인은 14세 남학생이었다.

이는 가해자들이 총기를 획득한 경로의 85%가 부모님, 친척, 친구 등 주변인이었다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특히 대부분은 부모의 총을 쓰거나 부모가 총기 애호가였다. 미 법무부 분석에 따르면 1966년부터 2019년까지 43년간 발생한 교내 총기 난사 가해자의 80%가 가족의 총을 사용했다.

유밸디 참사의 범인 라모스, 샌디훅 참사의 범인 애덤 랜자(당시 20세)의 어머니는 모두 총기 애호가였다. 2018년 텍사스주 샌타페이 고등학교에서 학생 8명, 교사 2명 등 총 10명을 죽인 범인 디미트리오스 퍼고치스(당시 17세) 역시 아버지의 총을 사용했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 미성년자인 피해자가 참사에서 살아남더라도 성인이 된 후까지 엄청난 직간접적 피해에 시달린다는 데 있다. WP에 따르면 1999년부터 지금까지 교내 총기 사건 사고의 사망자는 185명, 부상자는 368명이다. 특히 교내 총기 사건 사고로 잠재적 트라우마에 노출된 학생 수는 무려 31만 명이 넘는다.

대학 진학률, 생애소득 등의 피해도 크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따르면 학교에서 총기 사건에 노출된 경험이 있는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유급 가능성이 1.3% 높고 고등학교를 정상적으로 마칠 확률은 2.9% 낮았다. 특히 4년제 대학에 입학할 확률은 5.5% 떨어졌다. 직업을 얻어도 참사를 겪지 않은 학생보다 연 2780달러(약 345만 원)를 덜 번다. 이를 생애소득으로 환산하면 11만5550달러(약 1억4373만 원)의 차이가 난다.

인근 지역의 청소년 또한 상당한 타격을 입는다. 미 스탠퍼드대 정책연구소에 따르면 교내 총기 난사가 발생한 지역에서는 사고 2년 안에 20세 미만 청년의 항우울제 복용이 21% 늘었다.
○ 정서적 상처는 결코 시간이 해결해주지 못해

미 서부 콜로라도주 덴버 공립학교의 상담 교사 서맨사 해빌런드 씨(40)는 1999년 콜럼바인 고교 총기 참사의 생존자다. 당시 이 학교 재학생 2명이 동료 학생 12명과 교사 1명 등 총 13명을 살해한 사건은 미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23년이 흐른 지금도 ‘콜럼바인’이 미 교내 총기 참사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이유다.

당시 경험은 그가 상담 교사라는 직업을 갖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23년 전 해빌런드 씨는 직접 총에 맞지도, 친한 친구가 총에 맞는 것을 보지도 않았다는 이유로 별다른 심리 상담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2007년 교사로 근무하던 학교에서 총기 난사 모의 훈련을 하던 중 자신에게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수년간 상담 치료를 받았다. 유밸디 참사 후 해빌런드 씨는 WP에 “시간은 결코 약이 아니다”라며 생존자에 대한 관리 또한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12세 초등학생 에이바 올슨 역시 6년 전 타운빌 초등학교 총기 사건으로 단짝 제이컵 홀을 잃었다. 홀과 마찬가지로 타운빌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올슨은 ‘베프’와 같이 놀던 운동장에서 홀이 숨지는 것을 목격했다. 당시 6세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충격이었던 터라 이후 극심한 정신 이상 및 우울증에 시달렸다. 자해도 일삼았다.

올슨은 2018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비롯한 공화당 의원들에게 자신이 겪은 참사를 언급하며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편지를 썼다. 이후에도 비슷한 편지를 각계로 보냈지만 변하는 것이 없자 편지 쓰기를 그만뒀다.

유밸디 참사는 올슨의 트라우마도 다시 건드렸다. 그는 귀여운 고양이가 나오는 틱톡 영상을 보다가 우연히 참사 소식을 접했다. 울면서 엄마에게 달려가 “왜(Why)”만 거듭 외쳤다.

코네티컷주 뉴타운 고교의 3학년 학생 레이나 토스는 샌디훅 참사의 생존자다. 10년이 흐른 지금도 그는 식당에 갈 때 ‘무엇을 먹을지’보다 ‘어디에 문이 있는지’부터 살핀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탈출구부터 확보해 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그는 “학교에서도 괴한이 총을 들고 쳐들어오면 어떻게 탈출할지를 먼저 생각한다”며 아직도 당시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 반복되는 비극에도 총기 규제 난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며 총 구입 시 신원 조회 확대, 위험인물의 총기 소지 규제 등의 법안 제정을 촉구했다. 워싱턴=AP 뉴시스 

반복되는 비극을 멈추기 힘든 이유는 ‘개인이 총기를 쉽게 보유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근본 대책을 실천하는 일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미 사회에서 총기 문제는 단순한 의제가 아니라 낙태, 성소수자, 이민 등처럼 정치적 성향에 따라 첨예하게 입장이 엇갈리는 뜨거운 감자다. 총기 보유를 허용한 수정헌법 2조, 개인주의 전통이 강한 문화 등으로 인해 공화당, 보수층, NRA 등은 규제에 거세게 반대하며 교사 및 교직원 무장 강화 등이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유밸디 참사 사흘 후인 지난달 27일 텍사스주 휴스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테드 크루즈 텍사스 상원의원 등 공화당 주요 정치인이 참석한 가운데 NRA 연례 총회가 열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악을 방어하려면 총기가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쓸 돈을 교사의 총기 소유에 쓰자”고 주장해 참석자의 환호를 받았다. 이를 지지하는 미 유권자가 적지 않다는 점, 상원 100석을 집권 민주당과 야당 공화당이 각각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마련한 총기 규제 강화 법안이 상원 문턱을 넘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의회는 2018년 마저리스톤먼더글러스 고교 총기 참사 후 향후 10년간 학교 안전 강화에 10억 달러를 지원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학내 총기 참사를 줄이기 위해 미 연방정부가 통과시킨 유일한 법안이다. 미 50개 주는 이 천문학적인 돈을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유리 파편을 튀지 않게 잡아주는 필름을 붙이고, 초인종을 다는 일 등에 썼다. 총기 참사를 막을 리 만무하다.

최근 미 공립학교의 95%가 총기 난사 대비 모의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가짜 총을 든 난사범이 총을 발사하는 척을 하면 아이들이 가짜 피로 희생자 역할을 하는 이 훈련을 향해 적지 않은 시민단체는 “학생들의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 트라우마만 키울 뿐”이라고 비판한다.

자그디시 쿠브찬다니 뉴멕시코주립대 공공보건학과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최근 18년간 미국에서 도입된 교내 안전 강화 조치 중 무엇도 실제로 교내 총기 사고를 줄이는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감시 카메라 설치 같은 일로 총기 사건을 대비하다 보면 총기를 지지하는 정치인과 이익단체들이 ‘우리도 무언가 했다’는 식으로 여기게 돼 결과적으로 훨씬 위험한 환경을 조성한다고 우려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