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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 부릅니다 ‘부럽지가 않어’[광복이 외신클럽]

입력 | 2022-06-03 18:28:00


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한국과 브라질 축구대표팀의 A매치가 열리기에 앞서 체육훈장 청룡장을 수여받은 손흥민이 손을 흔들고 있다. 뉴시스

외신읽기가 어렵다구요? 국제부 기자 어깨너머에서 외신을 본 경력만 3년. 광복이가 놓치기 아쉬운 훌륭한 외신만 엄선해 전해드릴게요. 바쁜 일상 속 짬을 내 [광복이 외신클럽]을 완독해내신 당신을 위해 매 회 귀염뽀짝한 동아일보 인턴기자 광복이의 일상도 함께 공개합니다!


※‘광복이’는 생생한 글로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매주 한 번씩 등장하는 국제부 임보미 기자의 반려견(부캐)입니다.
2일 오래간만에 손흥민(30·토트넘)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누볐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 어느 때보다 차오르는 ‘국뽕’을 주체하기 어려우셨을 겁니다.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에서 한 시즌 최다 골을 넣은 선수의 가슴에 태극마크가 박혀있다니, 정말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습니다.


손흥민은 이날 경기장을 직접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체육훈장 최고 등급인 청룡장을 받았습니다. 보통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주는 훈장을 대통령이 친히 ‘찾아가는 서비스’로 수여한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날 발표된 잉글랜드 프로축구선수협회(PFA)가 뽑는 ‘올해의 선수’ 최종 후보 6인에 손흥민의 이름 찾아볼 수 없어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미 4월말 영국 축구기자협회(FWA)가 ‘올해의 선수’ 투표를 했을 때에도 손흥민은 두 표밖에 받지 못 했고 PFA가 지난달 20일 발표한 ‘팬들이 뽑는 올해의 선수’ 후보에도 손흥민의 이름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PFA 올해의 선수 최종 후보 발표가 더 관심을 모았는데 이번에도 손흥민이 후보에서 빠진 겁니다.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는 ‘노 손(No Son)’이 올랐을 정도였죠.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쳤지만 손흥민은 토트넘을 넘어 유독 외부에서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손흥민을 제대로 알아본 건 EPL 레전드 출신 게리 네빌 정도였습니다.

그는 ‘먼데이나이트풋볼’ 지난달 방송 프로그램에서 선정하는 ‘올 시즌 선수’로 손흥민을 뽑았습니다. 시즌을 마치기 전이라 당시 손흥민은 모하메드 살라(리버풀)에게 득점에서도 뒤지고 있었던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죠. 네빌은 손흥민이 살라보다 훨씬 약한 팀에서 뛰면서도 비슷한 득점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손흥민은 유럽 어느 팀에서 뛰더라도 도움이 될 선수”라며 “왜 심지어 지금까지도 손흥민이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지 궁금하다”고 한탄했습니다.

디 애슬래틱 홈페이지 캡처




영미 스포츠 전문매체 디 애슬래틱은 1일 ‘호날두, 케인은 있고 손은 없고-PFA의 올해의 선수 최종후보 선정을 이해하려 노력해보자(Ronaldo and Kane but no Son ¤ trying to understand the PFA Player of the Year shortlist)’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최종후보 리스트: 케빈 더 브라위너(시티) 버질 판 데이크(리버풀) 해리 캐인(토트넘) 사디오 마네(리버풀) 모하메드 살라(리버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디 애슬래틱은 “이 리스트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느냐”며 “손흥민은 어디에 있나?” “베르나르두 실바와 로드니는 또 어디에 있나?”라고 묻습니다.

디 애슬래틱은 “최종후보 명단은 선수의 이름값이 과도하게 반영된 것 같다는 인상이 든다”고 평했습니다. 디 애슬래틱은 프로 축구선수들에게 ‘올해의 선수’를 뽑으라고 할 때 이들이 로드니, 베르나르도 실바 같은 선수보다는 호날두 같은 레전드를 뽑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PFA 올해의 선수는 EPL 소속 20개 구단, 잉글리시풋볼리그 72개 구단, 총 92개 구단 선수들에게 모두 투표권이 주어집니다. 다만 같은 팀 동료는 뽑을 수 없습니다. 한 명씩 뽑아 가장 많은 표를 받은 6명이 최종후보로 선정됩니다. 별다른 필터링 없이 모든 선수 중에서 한 명을 뽑는 시스템입니다. 또 잉글리시풋볼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표수가 압도적인 영향을 끼쳐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 케인은 늘 많은 표를 쓸어 담습니다.

매주 자기 경기를 뛰느라 바쁜 프로 선수들이 다른 선수들이 매주 펼치는 활약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잦습니다. 디 애슬래틱은 PFA 투표의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고 지적합니다. 한 선수는 “솔직히 선수들은 스탯이나 소셜미디어가 없다면 자기가 경기할 때 말고는 다른 선수가 올 시즌 어땠는지 제대로 잘 알 수가 없다”며 “솔직히 기억나는 이름을 뽑게 된다”는 솔직한 설명을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자기 경기 뛰기 바쁜 선수들이 다른 선수들이 다른 팀에서 얼마나 잘하는 지를 신경 써서 볼 수 없고, 유명한 선수들에게 표가 몰리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디 애슬래틱은 FWA와 PFA 모두 한 명의 선수만 뽑을 수 있는 투표시스템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주 자체적으로 기자들과 편집자들에게 선수 6명의 이름을 적게 해 투표를 진행해본 결과 더 브라위너가 살라를 앞섰고 손흥민이 3위에 올랐다고 전했습니다.

물론 디 애슬래틱은 시티와 리버풀이 다른 EPL 팀들에 비해 한 차원 높은 수준의 팀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한두명의 스타에 의존하지 않는 강팀이기에 해당 팀 소속 선수들로 가득 찬 올해의 선수 최종후보 개개인의 스탯이 다소 실망스러워 보일 수 있다는 겁니다. 애초에 영재들만 모인 특목고에서 내신점수가 좀 낮다고 학생의 실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디 애슬래틱은 그래서 이번 리그에서 17~18득점을 한 선수들이 후보로 포함된 건 논란의 여지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하지만 득점왕 손흥민을 비롯해 로드리, 베르나르도, 주앙 칸셀로 같은 선수가 후보에서 빠진 건 분명 의문거리라고 지적합니다.

케인이 분명 현역선수 중 EPL 역대 통산 최대득점 기록을 가진 선수인 것도 맞고, 호날두가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로 평가되는 것도 맞습니다. 이들은 분명 ‘클러치 상황’에서 해결사로 활약하며 ‘역시는 역시’라는 평가를 듣는 선수들입니다. 프로 선수들이 특히 중요한 순간 활약하는 이들을 동경하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들이 이번 EPL 리그에서 가장 잘 한 6명의 선수였느냐는 분명 따져볼 문제라는 겁니다.

디 애슬래틱 홈페이지 캡처




디 애슬래틱은 지난달 24일 ‘손흥민은 어떻게 골든부트를 땄나’라는 기사에서 명실상부 올 시즌 EPL 최고의 선수가 된 손흥민의 성장을 조명했습니다. 애슬래틱은 2016년 여름, 토트넘에서 첫 시즌 고전한 뒤 독일로 돌아가려다 마우리치오 포체티노 당시 토트넘 감독의 설득으로 토트넘에 잔류한 손흥민의 성장 과정을 분석했습니다.

디 애슬래틱은 2016~2017 시즌부터 계산을 하면 지금까지 EPL에서 손흥민보다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는 케인, 살라, 제이미 바디(레스터 시티), 마네뿐이라고 강조합니다. 특히 손흥민이 과거 케인을 보조하던 역할에서 이제 간판 스트라이커로 케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아 골을 만들어내고 있는 선수가 됐습니다.

2016~2017 시즌부터 2021~2022 시즌까지 손흥민 득점분포 비교



디 애슬래틱은 2016~2017 시즌부터 올 시즌까지 손흥민의 득점 지역 분포를 분석했는데요.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좌측으로 치우쳐 있던 득점 지점이 정중앙에 몰려있습니다. 손흥민이 팀에서 전통적인 ‘스트라이커’의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과거 포체티노 감독 시절 손흥민은 주로 좌측에서 스트라이커 케인을 받쳐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케인이 손흥민에게 득점기회를 만들어주고 그 때마다 손흥민이 골로 연결시키는 모습이 자주 연출되고 있습니다. 애슬래틱은 손흥민이 케인보다 많은 득점을 기록한 건 이번 시즌이 처음이지만 손흥민이 팀에서 맡고 있는 역할의 변화를 볼 때 이 같은 역전이 벌어진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고 평했습니다.


2015~2016 시즌 이후 현재까지 손흥민 EPL 공격지표(90분 기준)




손흥민의 공격지표를 살펴보면 올 시즌 손흥민이 왜 골든부트를 손에 넣을 수밖에 없었는 지가 보입니다. 올 시즌 손흥민은 90분당 평균 0.69골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90분당 슈팅 수는 직전 시즌을 제외한 이전 5개 시즌 평균 슈팅수보다도 적었습니다.

특히 손흥민은 올 시즌 슈팅당 기대득점(슈팅의 질을 보여줌)이 0.18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이 수치는 리그 전체로 TOP5 안에 드는 최상위권 성적입니다. 올 시즌 슈팅이 50개 이상인 선수들의 평균 슈팅당 기대득점은 0.1 정도입니다.

특히 손흥민은 올 시즌 기대득점보다도 훨씬 많은 골을 넣었습니다. 언더스탯닷컴에서 EPL 선수들의 시즌 기대득점과 실제득점을 비교해 그린 표를 보실까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021~2022 시즌 선수별 기대득점과 실제득점.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오른쪽 위에 기대득점보다 한참이나 떠 있는 점에 써 있는 Son Heung-Min, 보이시나요? 손흥민의 올 시즌 기대득점은 16.99였는데 결과적으로 총 23골을 넣었으니 기대득점보다 약 6골을 더 넣은 셈입니다.

디 애슬래틱은 손흥민이 올해만 이렇게 기대이상의 활약을 했다면 아마 ‘럭키 스트리크(갬블링에서 연속해 승리하는 것을 일컫는 말)’라고 폄하됐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손흥민은 거의 매 시즌 기대득점을 깨는 활약을 이어왔습니다.

2015~2016 시즌부터 올 시즌까지 손흥민의 90분당 기대득점(빨간점)과 실제득점(파란점) 차이 추이 비교



올 시즌을 포함해 이제껏 기대득점보다 더 넣은 골의 수가 30골도 넘는다고 합니다.

디 애슬래틱은 손흥민이 2020~2021년 시즌에 토트넘과 장기계약을 합의해 이미 2021년 7월 이를 발표한 게 손흥민에 대한 외부의 관심이 증폭되지 않은 원인 중 하나라고 봤습니다. 선수를 둘러싼 이적설은 미디어와 누리꾼들이 좋아하는 소재입니다. 그런데 이적설이라고는 1도 없는 손흥민의 경우 토트넘 팬을 넘어 더 많은 관심과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된 측면도 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뭐 세간의 평가가 그리 중요할까요? 디 애슬래틱은 “손흥민이 미디어, 일반 대중, 영입 기회를 잃은 다른 구단들로부터 저평가되어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흥민이 크게 서운해하지는 않는 것 같다”며 이렇게 기사를 마쳤습니다.

“손흥민은 토트넘 팬들에게서 그 어떤 선수보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고국인 한국에서는 영웅이다. 또 골든부트 트로피를 안은 동시대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의 한 명이다. 그는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에도 돌아올 것이다.”

광복이는 손흥민 선수와 공통점이 두 개 있는데요. 하나는 공을 좋아한다, 다른 하나는 눈 밑에 일명 ‘손흥민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사를 다 쓴 광복이가 점이 닮은 손흥민 선수에게 노래를 하나 추천하고 노트북을 덮겠다고 하네요. 추천곡은 가수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어’입니다. 손흥민 선수와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활약하길 광복이가 기원합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