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반환 후 첫 경찰 출신 수장
8일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 단독 출마 후 당선된 존 리 전 정무사장(왼쪽)이 부인과 함께 꽃다발을 들고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홍콩=AP 뉴시스
“존 리가 ‘거수기(Rubber stamp) 선거’로 당선됐다.”
8일 간선제로 치러진 홍콩 행정장관 선거 결과를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렇게 묘사했다. 경찰 출신의 스트롱맨, 즉 강경 친중 인사 존 리(중국명 리자차오·李家超·65) 전 정무사장은 이날 선거에서 99.2%의 압도적 득표로 당선됐다. NYT는 그가 중국의 낙점을 받아 단독 출마했다는 점을 집중 부각했다. 지난해 3월 친중 인사의 선거 출마만 가능하도록 선거제도를 바꾼 결과, 중국공산당만 집권할 수 있으며 표결 때마다 100%에 가까운 찬성이 나오는 중국의 상황이 홍콩에서도 재연됐다고 우려한 것이다.
리는 당선 연설에서 “법치주의를 견지하고 홍콩을 대내외적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겠다”며 반중 활동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1997년 홍콩 반환 후 관료가 번갈아가며 집권했던 홍콩에서 반중 시위를 무자비하게 탄압한 전력이 있는 인사가 최초의 경찰 출신 수장이 됐다. 행정 및 금융 경험이 전무하고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 때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2020년부터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그가 강력한 공포 통치를 펼치면 세계의 금융허브였던 홍콩의 위상이 하락하고 서방과의 갈등 또한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 압승 예고된 ‘거수기 선거’
리는 이날 1461명의 선거인단 중 1428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1416표(99.2%)를 얻었다. 반대는 8표에 불과했다. 그는 홍콩 반환 25주년, 중국공산당 창당 101주년, 홍콩보안법 시행 2주년이 겹친 올해 7월 1일 5년 임기의 행정장관에 오른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투표장인 홍콩 컨벤션센터 주변에는 약 6000명의 경찰이 배치됐다. 7000명의 경찰이 별도로 인근에서 대기하는 등 삼엄한 분위기였다. 민주 국가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99.2%의 찬성률은 지난해 선거제 개편이 이뤄졌을 때부터 예고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행정장관 선거 때는 친중 인사끼리라도 경쟁을 벌여 일말의 민주적 형태를 갖췄지만 이번에는 그런 구색조차 사라진 거수기 선거였다는 의미다. 5년 전 선거에서 캐리 람 현 장관은 존 창 전 재정사장, 우쿽힝 전 고등법원 판사와 3파전을 벌였고 65.6%의 지지를 얻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경쟁자가 전혀 없는 이번 선거를 “겉치레 겸 눈속임”이라고 혹평했다. 실제 상당수 홍콩 시민이 “오늘 선거를 하는지도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는 등 관심도 또한 역대 어느 선거보다 낮았다.
○ 홍콩의 중국화 가속 불 보듯
그가 취임하면 홍콩판 국가보안법 제정, 송환법 재추진 등에 나설 것이 확실시된다. 중국은 줄곧 홍콩 당국에 국가 분열, 국가 전복, 테러, 외국과 결탁한 안보 위협 등 4가지 범죄만 처벌할 수 있는 현 보안법을 보완할 별도의 국가보안법을 자체적으로 도입하라고 압박했다.
홍콩 금융계와 홍콩에 진출한 외국인 기업가의 불안 또한 커지고 있다. 타라 조지프 전 주홍콩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AFP에 “리는 비즈니스 경험이 없는 첫 번째 홍콩 지도자”라며 중국의 우선순위가 홍콩의 경제가 아닌 안보와 통제에 있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방역 정책을 완화하고 있지만 홍콩이 중국의 강력한 격리 정책을 좇아 출입국에 많은 규제를 가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