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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도시 된 마리우폴…러 “무기 버리고 떠나라” 최후통첩

입력 | 2022-03-21 17:01:00


‘거리에 널린 시신들 사이로 어린아이 시신까지 보인다. 러시아군에 포위된 도시에 갇혀 눈을 녹여 먹으며 버티던 사람들은 굶주리다 못해 주인 잃은 개까지 잡아먹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풀의 21일(현지 시간) 모습이다. 러시아는 이 도시를 함락하기 위해 쑥대밭으로 만든 뒤 데드라인을 정해 항복을 요구했지만 시당국이 항복을 거부하면서 도시 전체가 괴멸 위기에 놓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때 우크라이나의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였던 마리우폴이 이제 거대한 납골당이자 유령도시가 됐다”고 전했다.


● 러, 전쟁 성패 직결 마리우폴 함락 집착
20일 러시아군은 마리우폴 시에 “21일 오전 5시(한국 시간 오전 11시)까지 무기를 버리고 도시를 넘기라”고 요구하면서 동이 트기 전 항복하면 민간인 대피 통로를 개방해주겠다고 회유했다. 마리우풀 시당국은 항복 대신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인도주의적 대피 통로를 열어라’는 편지를 러시아군에 전달했다. 그러자 러시아 육해공군은 더욱 가혹하게 전방위 폭격을 퍼붓고 있다.

러시아가 마리우풀 함락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번 전쟁의 성패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마리우풀은 2014년 강제합병한 크림반도와 동부 돈바스 내 친러시아 세력이 세운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을 잇는 지점에 위치해있어 이 곳을 점령하면 남, 동부 전선이 연결돼 우크라이나 군을 무너트리기가 수월해진다. 워싱턴포스트(WP)는 “마리우풀이 점령되면 수도 키이우와 제2도시 하르키우까지 남북으로 포위해 함락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 “2차 대전 때 레닌그라드처럼 완전 파괴”
마리우폴 인구 47만 명 중 15만 명은 이달 초 도시를 떠났다. 남은 32만 명 중 20만 명도 탈출을 시도했지만 러시아군 포위에 막혀 식량과 수도, 가스, 전기가 모두 끊긴 상태로 3주 넘게 도시에 갇혀 있다.

주민 미콜라 오시첸코 씨는 “지하실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너무 목이 말라 히터에서 있던 물도 빼 마시고 눈도 녹여 먹었다. 개울도 찾아다녔는데 개울에 긴 줄이 생기면 러시아군의 공습 타깃이 됐다”고 했다. 그는 “폭탄이 떨어질 때마다 절박한 마음에 아들을 몸으로 감싸지만 아들을 지킬 순 없다는 걸 알기에 완전한 무기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마리우폴에서는 공습으로 사망한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조차 너무 위험해 거리에는 떠돌이 개들이 방치된 사체를 먹는 모습도 목격되고 있다.

대피할 곳을 찾던 중 폭격을 받아 딸과 4살배기 손녀를 잃은 블라미디르 씨는 BBC에 이같이 말했다. “땅을 봤는데 손녀의 머리가 심하게 훼손돼 있었어요. 바로 옆에 있던 딸도 다리에 중상을 입고 다음날 숨을 거뒀어요. 신이시여,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제가 이 어여쁜 아이들을 묻다니요.”

학교 지하실 방공호에서 200여명과 함께 대피해있었던 크리스티나 졸라스 씨는 스카이뉴스에 “공습 때 한 여성이 엉덩이에 파편을 맞았다. 구호인력 도착 전까지 그 상태로 꼬박 하루를 버텨야했던 여성은 너무 고통스럽다며 독약을 달라고 부르짖었다”고 전했다. 그는 “잘 때도 폭격이 계속돼 눈뜨면 아이들을 몸으로 덮은 채 어디에 떨어질지 모를 폭탄을 기다렸다”고 했다.

유럽연합(EU) 외교관 중 가장 마지막으로 마리우폴을 떠난 그리스 총영사 마노리스 안드룰라키스는 자국 도착 후 인터뷰에서 “마리우폴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장기 포위로 100만 명 이상 사망한 레닌그라드(현 항구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처럼 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된 도시로 기억될 것”이라며 “내가 본 것을 누구도 보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한 우크라이나 병사는 ‘마리우폴에서의 마지막 메시지’란 동영상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이름을 부르며 “약속한 무기와 탄약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