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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前총리 “포퓰리즘 공약은 국민에 이해 구하고 과감히 걸러내라”

입력 | 2022-03-10 03:00:00

[새 대통령에 바란다]한덕수 前 국무총리



한덕수 전 국무총리


한덕수 전 국무총리(73·사진)는 “새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각 부처 장관에게 고유의 어젠다를 부여함으로써 실질적인 권력 분산이 가능토록 해야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막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이명박 정부에서 주미대사를 지내는 등 진보, 보수 정권에서 두루 중책을 맡았던 한 전 총리는 대선 당일인 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새 대통령 당선인의 과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한 전 총리는 이어 “내각이 부여받은 권한으로 각 분야에서 실질적으로 민생에 집중하는 동안 대통령은 규제개혁, 기후변화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고난도의 이슈를 풀기 위한 대야(對野) 소통에 정치적 리더십을 집중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선 기간 각 후보들이 쏟아낸 각종 포퓰리즘 공약에 대해서는 “표를 얻기 위해 중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도 않은 정책들이 선거 기간 쏟아져 나온 만큼 문제가 있는 공약에 대해선 당선인이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이해를 구하고 인수위 과정에서 걸러내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거 과정에서 나온 경쟁 후보의 좋은 공약은 얼마든지 채택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인수위에서 검토해야 한다”고도 했다.

한 전 총리는 이어 “대통령의 시간과 노력의 절반 이상은 국민, 정치권, 언론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데 써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에서 불통 논란이 제기된 만큼 소통은 새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이슈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관마다 별도 어젠다 부여… 권한 주고 책임도 확실히 물어야”

장관 인선때 美처럼 철저 평판조회 … 목표 과제 제출 받는 방식 고려할만
저출산 해법 등 담론 논의 부족… 당선인이 인수위부터 방향 잡아야
대국민 소통이 가장 중요한 이슈… 대통령 자주 보일수록 국민 안심



“소중한 한표” 20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된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원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대통령선거라는 게 공동체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정책에 대한 자연스러운 토론이 이뤄지는 장인데 이번에는 그런 담론 형성 과정이 부족했다. 저출산 고령화가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는 문제, 금융개혁 등은 제대로 논의된 기억이 없다. 그만큼 새 대통령 당선인이 인수위 과정에서부터 제대로 방향을 잡고 해야 할 게 많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9일 대선 당일 동아일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선거 과정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주요 후보들이 각종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내고 네거티브 캠페인이 전개되면서 국정 비전과 방향에 대한 논의는 진지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전 총리는 “이제 선거 과정은 끝났고 통치와 거버넌스를 위한 정책의 검토와 입안이 본격적으로 이뤄져야 할 시기”라며 “새 대통령은 국내외적으로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서 취임하는 만큼 어느 때보다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행시 8회)인 한 전 총리는 진보, 보수 정부에서 두루 중책을 맡은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테크노크라트(전문 관료) 중 한 명이다. 김대중 정부에선 대통령정책기획·경제수석비서관을, 노무현 정부에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데 이어 이명박 정부에선 주미 대사를 역임했다. 인터뷰는 이날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에서 이승헌 편집국 부국장이 1시간 반 동안 진행했다. 다음은 주요 일문일답.
○ “장관에게 고유의 영역 주고 책임까지 물어야”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새 대통령 당선인에게 바라는 점을 1시간 반 동안 국내외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시했다. 한 전 총리는 선거 기간 중 쏟아낸 포퓰리즘 공약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면 당선인이 솔직하게 국민에게 설명하고 철회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이번 대선을 지켜본 소감은….


“국가가 나아갈 방향이나 정책에 대한 토론이 부족했다. 큰 담론보다는 마이크로 정책, 국민 개개인을 만족시키기 위한 비교적 작은 정책들이 선거의 전면에 부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선거 기간 개헌 논의도 있었는데,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새 대통령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나.

“처음부터 청와대와 대통령이 모든 정책을 주도하는 만기친람식 국정 운영은 이제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대통령의 권한은 내각의 능력 있는 사람들이 적절히 자기 권한과 책임을 가짐으로써 더욱 커지게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권한 이양은 그동안 선거 때마다 여러 번 얘기가 나왔지만 잘 실현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총리와 장관의 영역과 권한을 명확히 해서 이에 따른 책임을 묻는 관행을 확립했으면 한다. 대통령은 대통령의, 장관은 부처마다 장관의 어젠다를 갖게 함으로써 한국 사회에 권력 분산과 이양이 실제로 시작될 것이라는 상징적 신호를 보내야 한다. 이를 위해 새 대통령이 각 부처 장관을 임명할 때 ‘이런 과제를 하겠다’는 내용을 제출하도록 하는, 일종의 계약을 맺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그 과제를 하는 데 필요한 권한을, 거의 이 문제에 관해서는 대통령과 같은 수준의 권한을 주고 대신 미진하면 해임 등 책임을 묻는 것이다.”

―조각 과정에서 새 대통령에게 특별히 해 줄 조언이 있다면….

“후보자의 일처리 능력이나 해당 분야의 전문성은 당연한 것이고 흔히 간과하는 것이 후보자의 평판 조회다. 한국 사회는 평판 조회라고 하면 마치 뒷조사나 누구를 캐는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 그 어떤 사전 조사보다 확실하다. 미국의 경우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장관 후보자의 초등학교 동창까지 찾아가서 탐문한다. 이런 과정 없이 위에서 찍어 내려오는 인사는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 “지키지 못할 포퓰리즘 공약은 대통령이 국민 설득해야”
―출마한 거의 모든 후보가 다양한 포퓰리즘 공약을 내놨다.

“곧 출범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공약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재정이 감당할 수 없다면 공약 이행이 어렵다고 대통령 당선인이 솔직하게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런 설득 작업이 정치적으로 쉽지 않을 텐데….

“대통령의 시간과 노력의 절반 이상은 국민, 정치권, 언론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데 써야 한다. 포퓰리즘은 결국 우리의 미래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그런 정책을 추진하려면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코스트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포퓰리즘 정책을 최대한 억제하도록 국민과 정치권을 설득하는 임무를 가진 최후의 보루일 수밖에 없다. 누가 할 수 있겠나.”

―대선 기간 내내 재정건전성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막대한 재정 지출과 국가부채 증가, 초확장적 금융 정책이 단기적으로는 불가피했다. 이제는 재정건전성과 금융 정책도 정상화돼야 한다. 이미 우리의 국가부채 증가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경고할 정도로 빠르다.”

―새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 방향은 어떻게 잡아야 할까.

“부동산 정책에서 공급을 같이 하겠다는 것은 아주 타당하다. 다만 공급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단기간 내에 부지 확보 등이 어렵다면 민간이 재건축 등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를 바꿔 줘야 한다.”

―대선 기간 내내 보유세와 양도소득세 등 세제 개편도 언급됐다.

“세금을 올리는 속도가 너무 빠르면 안 된다. 노무현 정부 때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했는데, 세율 목표를 5년 안에 달성하는 것으로 잡았다. 20년 정도로 잡았다면 훨씬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 “우크라이나 사태는 결국 동맹만이 확실하다는 것 보여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미 관계도 쟁점이 되고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결국 동맹이 확실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동맹이라면 반드시 신뢰관계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신뢰가 없으면 동맹이 존립하기 어렵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계속 발전하면서 다양한 외부 위협에 대처하려면 반드시 한미동맹이 필요하다.”

―미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한국이 갈수록 복잡하고 어려운 선택을 요구받고 있는데….


“중국이 세계 2대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상황에서 그에 걸맞은 국제규범을 지키도록 하는 다자적인 노력에 우리는 동참해야 한다. 인권 같은 가치를 지키도록 하는 게 그중 하나이다. 그런 노력이 결과적으로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국익을 지켜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틀에서 미중 관계를 받아들이고 우리와의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일본과의 관계가 광복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사가 우리의 미래와 안보능력 확보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아야 한다. 도덕적 우위는 확보하되 경제적으로는 우리가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이 정치권을 설득해야 한다. 어려운 과제지만 결국 이런 문제를 해결하라는 의미로 5년 단임 대통령제가 유지되는 것이라고 본다. 재선을 생각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국가의 중장기적인 미래를 보고 시도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내내 불통 지적을 받았는데….

“새 정부에서 대국민 소통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지도 모르겠다. 미국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나갈 때 그 앞에 서 있다가 중요한 이슈를 물어보고 이를 생중계한다. 일본이나 영국도 비슷하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장면들이 국민을 안심시킨다. 대통령이 견제를 받고 노출될수록 국민이 안심하는 것이다.”

―새 정부에서 기후변화 이슈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기후변화에 대처하려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산업 모든 부문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개인의 삶 전반이 바뀌는 문제다. 우리에게 위기인 동시에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세계은행, 녹색기후기금 등 국제적으로 막대한 재원이 조성된다. 우리는 해외 개발 경험과 높은 기술력으로 개발도상국을 도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다. 1960년대 수출주도 경제를 할 때의 상황과 비슷하다. 새로운 기회와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 먼 미래의 이야기 같지만 새 대통령이 간과해선 안 될 대목이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약력△전북 전주(73)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통상산업부 차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주OECD 대사
△대통령정책기획·경제수석비서관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국무총리
△주미대사
△한국무역협회장

정리=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