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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사도광산은 강제동원의 현장…세계유산 등재 막아야”

입력 | 2022-03-05 10:11:00


일본이 사도(佐渡)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시기를 에도 시대(1603~1868년)로 한정하고, 유산 대상 지역도 축소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사실 왜곡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일본 정부의 정확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최근 발간한 ‘세계유산의 등재조건과 일본의 행태’라는 제목의 동북아역사 리포트에서 “사도광산에 있어, 유산의 적용 시기를 특정 시기로 한정하고 3개소 9건에서 2개소 3건으로 축소한 것은 메이지시대 이후의 변화에 대한 치명적인 한계와 약점을 은폐하기 위한 것으로 밖에 추정할 수 없다”며 “‘강제동원과 관련된 역사 은폐’ 또는 ‘강제동원의 논쟁을 피하기 위한 술수’가 주목적이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산업유산은 개념적으로 어느 한 시대의 상황을 대변하는 화석화된 유산이기보다는 탄생에서 산업기능이 멈출 때까지 전체 작동과정이 모두 인정되는 ‘진행형 유산’”이라며 “현존하는 유산의 탄생 시기를 몰인식한 채, 탄생하기 전 과거 시기(에도시대 이전) 만을 평가대상으로 한다면 산업유산의 기본 속성과 가치 평가에서 큰 오류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2015년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의 등재 과정에서 강제동원 논란을 경험한 일본은 2017년 7월31일, 일본 세계문화유산부회의 마쓰우라 고이치로 전 유네스코사무국장이 “(조선인 강제노동에 관해) 사도광산에서 다시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하며 사도광산을 등재 추진 유산에서 제외했다. 이후 2020년 3월31일, 근본적인 대안으로 사도광산의 적용 시기를 에도시대까지로 단축하고 연속 유산의 대상들을 축소한 ‘사도섬의 금산(佐渡島の金山)’이란 이름의 신청서를 문화청에 제출했다.

2007년 일본 정부는 ‘근대화 산업유산군 33’의 목록화 사업을 시행했다. 2014년에 ‘도미오카 제사공장과 비단산업 유산군’이, 2015년 ‘일본의 메이지산업혁명 유산군: 철강, 조선 및 탄광(이하 ’메이지산업혁명유산‘)’이 등재에 성공했다.

사도광산은 ‘The Sado complex of heritage mines, primarily gold mines’란 이름으로 2010년 6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랐다. 이 설명문에는 20세기 중반까지 작동했던 사도광산의 기능과 역할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로 기재돼 있다.

강 교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로 반복되어 적시된 400년이 넘는 변천 역사에 대한 강조는 사도광산이 어느 특정시대(에도시대 이전)에 국한되지 않으며 메이지, 다이쇼, 쇼와 시대를 포괄하는 광산임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2010년에 유네스코에 제출했던 잠정목록 내용과 달리, 시기를 한정하고 자산을 축소한 점에서 일본의 책략적 접근이 인지된다. 이 과정과 방식은 2015년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의 등재 과정과 판박이”라고 지적했다.

2010년부터 등재를 추진하던 ‘사도섬의 금산(Sado island Gold Mines, 이하 ’사도광산‘)’은 올해 등재 추진을 공식화했다. 사도광산에서는 1939년부터 조선인이 강제동원됐고, 태평양전쟁(1941~1945년) 기간 동안 금이 아닌 구리·철·아연·납 등 전시 물자를 생산하는 광산으로 활용됐다.

강 교수는 “사도광산은 강제동원의 현장이었다”며 “어떤 교묘한 반전의 논리와 속임수를 준비하고 있는지 현재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만큼은 세계유산 등재를 막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기회를 19세기 중반 이후 100여년 동안 이어졌던 그들의 온갖 침탈과 만행, 그리고 속임수와 왜곡의 증거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