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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잡은지 이틀만에…전장에 선 여성들 “조국 우크라 지키겠다”

입력 | 2022-02-28 15:09:00


우크라이나 군은 러시아 군에 화력이 절대 열세라는 평가 속에서도 키예프 외곽까지 진격한 러시아군을 나흘 째 막아내며 러시아군에 수도를 비롯해 주요도시를 내주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원군으로 참여한 시민들이 기대 이상의 기여를 하면서 단기간에 수도를 점거하려던 러시아군의 계획을 틀어놨다고 평가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군은 배경, 능력, 성별에 관계없이 싸울 의지가 있는 모든 이들을 자원군으로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27일(현지시간) “지난 이틀간 자원군을 포함해 총 10만 명이 예비군으로 등록했다”고 발표했다. 총을 전혀 잡아본 적이 없는 여성들도 수도를 지키겠다는 의지 하나로 전장에 나서고 있다.
○총 잡은 지 이틀 만에 전장에 선 여성들…“우리나라에 살고 싶을 뿐”
교사 줄리아는 26일(현지시간) 키예프에서 동료 여성 자원군과 전투 파견을 대기하며 한 손으로는 소총을 꽉 잡고, 다른 손으로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냈다. 대기차량에 마주앉아 있던 뉴욕타임스(NYT) 기자가 ‘괜찮으냐’ 묻자 “난 그저 우리나라에 살고 싶을 뿐이다. 그게 다다”라고 했다. ‘총을 쓸 줄 아느냐’는 질문에 줄리아는 “아직 잘 모른다. 이틀 전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끔찍하다”고 말했다. 도무지 선택지가 없어 총을 든 줄리아는 인터뷰 내내 비통한 눈물을 참지 못했다. 여성 사업가인 올레나 소콜란 씨 역시 “폭발음을 들은 순간 (자원) 준비가 끝났다고 결심했다”며 “난 성인이고, 건강하다. 이건 내 의무”라고 말했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여성 군병력 10%까지 증가
두 아이의 엄마인 나디아 바비쉬 준부사관은 우크라이나 동부 졸로테 지역 검문소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 총을 쥐고 있는 그녀의 오른 손에는 결혼반지와 약혼반지 두 개가 끼워져 있다. 러시아군과 교전이 한창인 최전선은 이 곳에서 400m도 떨어져있지 않다. 바비쉬는 “여자들이 입대하는 이유도 남자들과 다르지 않다. 우리도 우크라이나를 지키고 싶다”며 “우리 나라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있다”고 말한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고 돈바스 지역 분리독립주의 세력에 대한 지지를 표했을 때만해도 우크라이나의 여성 군인은 흔치 않았다. 하지만 이후 정부군에 합류한 여성은 전체 군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크게 늘었다. 바비쉬 역시 2017년 군에 입대해 그 사이 둘째도 낳았다.

올레나 빌로제르스카는 참전용사 출신인 남편에게 총쏘는 법을 배웠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 전장에 나타나자 남성 군인들이 다들 자신을 의사인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크리스찬사이언스모니터는 저격수로 활약하고 있는 빌로제르스카는 러시아군이 주요 타깃이 될 만큼 전장에서 명성을 쌓고 있다고 전했다.
○20~50대까지 자원병 모집에 긴 줄, “총 못 들면 헌혈이라도”
물론 남성들이라고 모두 전투에 투입될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자원병을 모집하는 대기줄에는 20대부터 50대까지 전투와는 전혀 상관없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온라인 유통업체 애널리스트인 이고르 씨(37)는 NYT에 “나는 군 경험도 없고 경찰도 아니고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싸울지 배울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트클럽 매니저로 일하던 데니스 메타쉬 씨(33) 역시 “여자, 소녀 할 것 없이 지금은 모두가 나라를 지킬 때다. 지금 상황을 보라”라고 말했다. 그가 일하던 나이트클럽 역시 폭격을 입었다. 이 나이트클럽에서 남성 스트립 댄서로 일하던 그리고리 맴쳐 씨(40)도 “우린 어떻게 해서든 우리나라를 지킬 것이다. 이게 우리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호르 자볼라키예브대학교 역사학 교수(58)는 “가족 모두가 걱정한다. 하지만 아내도 딸도 (자원병에) 가지 말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내가 여기(전장)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래머인 올렉산드르 호르부노프 씨(24)는 부모님의 반대로 군에 지원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도 해야겠다 싶어 헌혈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군을 믿는다. 우릴 지켜줄 것이라 결심한 이들이다. 모두가 그렇다. 모두가 키예프가 이틀이면 함락될 것이라고 했지만 사흘이 지났고 여기에서 아직 러시아기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심리학자 이리나 코지엔코 씨(42) 역시 “헌혈이라도 하고싶어서 왔다”며 “두렵기도 하지만 화가 난다. 오늘 날이 이렇게 화창하고 봄 같은 날씨에 내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지역별로는 각종 시민단체, 자원봉사단체들이 손들고 나섰다. 이들은 공병을 모아 화염병을 만들고 모래주머니를 쌓아 벙커를 만들고 있다. 한 남성은 돕겠다고 나서는 아이들에게 “비켜라. 다칠 수 있어. 이건 어른들 일이야”라고 말했다.

해외에 살고있는 우크라니아인들도 고국을 돕기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나섰다. 재영 우크라이나인 모음인 런던의 우크라이나 소셜 클럽은 구급상자부터 부츠까지 시민군에게 필요한 각종 물품들을 모두 모아 보내고 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