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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EU-日-호주 등 동맹국과 러 제재”… 韓, 당장 동참 계획 없어

입력 | 2022-02-24 03:00:00

[우크라이나 사태]
美, 금융-수출통제 등 제재안 제시… 캐나다-日 등 독자 제재 잇단 발표
韓, 러와 관계악화 경제적 부담 고려… 靑 “수출-원자재조달 등 충격 가능성”
소극적 일관 땐 동맹서 소외 우려… 野 “망설임 자체가 국익 부합 안해”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2022년도 국가안전보장회의 및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청와대 제공)2022.2.22/뉴스1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갈등이 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우리 정부도 미국이 주도하는 대(對)러시아 제재 동참 여부 등을 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다만 미국이 러시아 최대 국책은행인 대외경제은행(VEB) 등을 제재하고, 유럽 캐나다 호주 일본 등은 잇따라 러시아에 대한 독자 제재를 발표했지만 정부는 이러한 움직임에 당장 동참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고강도 대러 수출 통제 제재안을 이미 한국에 공유한 데다 제재 동참까지 요청한 상황에서 정부가 경제적 부담 등을 이유로 지금처럼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할 경우 동맹 전열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美, 동맹국 협의해 러 제재… 韓 포함 안 돼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22일(현지 시간) 전화 브리핑에서 대러 제재와 관련해 “우리는 유럽연합(EU) 영국 캐나다 일본 호주 등 동맹국 및 파트너와 함께 논의해 하루도 안 돼 첫 번째 제재를 발표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제재 준비 과정에서 동맹국과 협의를 거쳤다는 것. 하지만 한국은 백악관이 밝힌 제재 동참 국가에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도 이날 조 바이든 행정부가 대러 제재와 관련해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 아시아 3개국의 지지를 얻었다고 보도했다. 역시 한국은 거론되지 않았다.

23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미국은 최근 대러 수출 통제 제재안을 한국과 공유했다. 이 제재안에는 러시아의 경제와 안보에 직접적 타격을 줄 수 있는 금융, 첨단산업, 항공우주 등은 물론이고 여행, 소비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수출 통제 조건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항목들이 몇 페이지에 걸쳐 나열된 것으로 전해졌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한국에 여러 차례 대러 제재 동참을 설득해 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23일 “우리나라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미국 등 관련국들과 긴밀히 소통해 오고 있다”며 미국의 제재 동참 요청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 美 제재 동참 요청… 정부, 당장 계획 없어
바이든 행정부의 거듭된 제재 동참 요청에도 우리 정부는 당장은 수출 통제 등 구체적인 제재 패키지 동참은 물론이고 제재 대열에 함께하겠다는 원론적 선언도 일단 계획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적 지원이나 파병에 대해선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우리가 검토하는 방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는 이미 제재 조치를 선언한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과도 대조되는 행보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23일 “러시아 국채 등의 일본 내 발행과 유통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제재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배경은 우선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에 따른 경제적 부담 때문으로 풀이된다. 강도 높은 제재가 이어지면 에너지 수급 및 공급망 확보 등에서 결정적인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것. 정부는 천연가스와 원유 값이 올라 수급이 불안정해지면 원유 비축물량(106일분)을 반출하고, 천연가스를 대체할 다른 연료를 더 많이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금융시장에선 환율이 급변동하는 상황 등을 우려해 유동성을 적기에 공급하는 등 시장 안정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장기화되면 수출시장, 금융 거시 부문, 원자재 조달 등에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정부는 제재 동참에 적극 나설 경우 북핵 문제 등에서 러시아의 협력을 얻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일단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면 그동안 러시아와 쌓았던 신뢰관계를 되돌리기가 어려워진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의 동맹국들이 잇따라 공개적으로 제재 동참을 선언한 상황에서 한국만 머뭇거리는 모양새가 향후 바이든 행정부와의 관계에 상당한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미국이 간접적으로 현재 우리의 스탠스(자세)에 이미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외교부 1차관을 지낸 국민의힘 조태용 의원은 “러시아의 국제법 위반 사실이 명확한 상황에서 정부가 제재 동참을 망설이는 자체가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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