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하는 여자들/장영은 지음/316쪽·1만7000원·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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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이니 어디까지든지 남편의 종이 되라는 말입니까?”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 10월 15일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박인덕(당시 35세)은 남편 김운호와 이혼을 준비하며 가진 매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박인덕은 자신이 보내준 생활비로 남편이 첩과 생활했다는 것을 알고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김운호는 위자료 2000원을 받고 이혼에 합의했고, 박인덕은 두 딸의 양육권도 얻었다. 당시 이혼은 여성에게 부정적인 꼬리표를 달았지만 박인덕에게 그 꼬리표는 어떤 장애도 되지 않았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박인덕은 같은 해 항일 여성단체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서 활동하다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화학당(이화여대 전신) 교사로 재직할 때 제자가 유관순 열사다. 그는 이혼 후 비난과 추문이 이어지던 때 미국으로 건너가 종교 연설가로도 활동했고 1932년 조선직업부인협회를 조직해 여성들을 위한 경제학 강연을 주도하기도 했다. 광복 이후 그는 우익 인사로 활동했지만 정작 자신의 자서전 ‘구월 원숭이’에선 자신의 이념이나 현실 인식, 역사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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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