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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 빌리에겐 손이 언어… 가족사이 방치된 소통에 감정이입”

입력 | 2022-02-11 03:00:00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서 8년만에 다시 ‘빌리’役 이재균
초연때 ‘빌리’역으로 동아연극상, 뮤지컬 드라마 영화 등 장르 확장
“잡탕 배우?… 정말 재밌습니다”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초연에 이어 빌리 역을 다시 맡은 이재균은 “재밌고 치열하게 준비하고 연기했던 초연 때 기억이 떠올라 당시 마음을 되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노네임씨어터 제공


교사, 언어학자, 추리소설 작가…. 높은 언어 구사력을 가졌지만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 어느 가족이 있다. 그리고 그들과 살아가는 선천성 청각장애인 막내아들 빌리. 현재 공연 중인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은 빌리 가족이 겪는 매끄럽지 않은 소통에 관한 이야기다.

2014년 초연 당시 데뷔 3년 차 신인이었던 배우 이재균(32)은 빌리 역을 맡아 제51회 동아연극상 유인촌신인연기상을 받았다. 8년 후 재공연에서 다시 빌리를 연기하는 그를 연극이 공연되는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8일 만났다. “사실 초연 때 소속사에선 하지 말자고 했어요. 빌리가 아무래도 신인이 소화하기엔 어려운 캐릭터여서요. 하지만 대본을 읽어나가는데 시끄럽게 싸우는 가족들 사이에서 방치된 빌리에게 점점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무조건 하고 싶다고 했어요.”

빌리는 구어(口語)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이다. 수어(手語)를 열등하다고 여기는 아버지의 요구로 입술 모양을 읽고 입 모양과 혀의 위치, 성대의 진동을 통해 말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애인 실비아에게 수어를 배우면서 구어를 강요했던 가족과 균열이 생긴다. “언어든 구어든 각자에게 맞는 소통의 수단이잖아요. 다른 이들에게는 말이 언어지만, 빌리에게는 손이 언어인 거예요.”

가족이 논쟁을 벌이는 1막에서 빌리는 대화에 끼려 수차례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여러 명이 대화하거나 입 모양을 보지 못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빌리는 “무슨 대화를 하느냐”고 묻지만 가족은 그를 소외시킨다. “1막에서의 연기가 가장 까다로웠어요. 예민하게 가족의 입을 쫓으며 이해하려고 하니까요.”

11년 차 연기 경력의 그는 연극뿐 아니라 뮤지컬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영역을 확장 중이다.

“친구들은 저더러 ‘잡탕 배우’라고 불러요.(웃음) 연기는 사람 한 명 한 명을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걸 배웠어요. 몸에 착 붙지 않았던 역할이 어느새 맞춰질 때가 있는데…. 그게 정말 재밌습니다.”

27일까지. 전석 6만 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