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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지 못해 멸종된 모리셔스 도도새 그리며 꿈과 자유를 본다”

입력 | 2022-02-07 03:00:00

김선우, 서울 가나아트센터서 개인전
2019년 550만원 팔린 첫 출품작, 작년 경매서 1억1500만원에 낙찰
경매시장이 키운 작가 꼬리표에 “악담 이기려 작업에 더 집중”



3일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Paradise’에서 자신의 작품 앞에 선 김선우. 그는 매일 오전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3일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는 연휴 직후인데도 관람객들로 붐볐다. 젊은 스타 작가 김선우(34)의 개인전 ‘Paradise’가 열리고 있었다. 그는 인도양 모리셔스섬에서 날지 못해 멸종한 도도새를 그리며 꿈과 자유를 말한다. 불현듯 떠오른 소재는 아니다. 이날 기자와 만난 그는 이전부터 새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신작 21점으로 구성된 전시에는 세로 162cm, 가로 520cm의 ‘Paradise of Dodo’를 비롯해 구름, 저녁노을 등을 새로운 구도로 선보인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명화 속 장면을 패러디한 기존 스타일도 볼 수 있다. ‘The Great Wave Off Indian Ocean’은 일본 우키요에(목판화) 작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파도’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스스로가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어려서부터 그리기를 좋아했다. 고교 2학년 때 뒤늦게 입시를 준비해 동국대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변웅필 작가로부터 배운 뒤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졸업 후 부모님 뜻에 따라 교육대학원을 다녔지만 그림에 대한 갈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미술 재료비를 벌려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고, 캔버스 틀을 살 수 없어 졸업전시 종료 시즌에 트럭을 빌려 버려진 걸 주우러 다녔다. 그는 “물리적, 심리적으로 힘들었지만 작업실에 너무 가고 싶었다. 이 정도면 그림 그리는 게 운명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대학 졸업 즈음 새 머리를 한 인간을 그렸다. 도도새를 소재로 삼은 계기는 2015년 한 달간 다녀온 모리셔스섬 답사였다. 현지인에게 “도도새를 아느냐”고 물으며 나눈 대화와 감상을 기록하고 드로잉했다. 그해 겨울 독일 여행 때 구상이 더 구체화됐다. “일주일간 현지 갤러리에 포트폴리오를 내놨는데 백전백패였어요. 돌아가기가 아까워 벼룩시장 바닥에 앉아 그림을 그려 팔았는데 10유로를 벌었죠. 그때 그린 그림의 도상이 지금 작업의 뼈대가 됐습니다.”

그의 그림은 미술시장에서 주목받았다. 2019년 5월 경매에 처음 출품해 550만 원에 낙찰된 ‘모리셔스의 일요일’은 지난해 9월 경매에서 1억1500만 원에 팔렸다. 희소식이지만 짧은 기간에 유명해진 그에게 ‘경매시장이 키운 작가’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특정 작가를 띄우려고 가격을 올리는 ‘작전주’ 아니냐는 말까지 들렸다. 김선우는 “난 그림을 그릴 뿐인데 왜 악담하는지 두려웠다. 일주일간 붓을 들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삶의 정점이 너무 빨리 온 게 아닌가 싶어 불안했다. 자중하지 않으면 빨리 내리막길에 접어들 수 있다는 생각에 작업에 더 집중하려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27일까지.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