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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최준선]국민연금, 대표소송 나설 자격 있나

입력 | 2022-02-03 03:00:00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국민연금이 ‘수탁자책임활동에 관한 지침’을 개정해 대표소송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대표소송이란 임원이 법령·정관을 위반하는 등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 소수 주주가 임원을 상대로 회사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말한다. 벌써 20여 후보 기업에 서한을 발송했다는데, 주로 경영과 관련해 기소됐거나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을 받은 임원이 대상이다.

국민연금이 대표소송 요건인 지분 0.01% 이상 보유하고 있는 상장사 수는 1000개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자회사·손회사·증손회사 임원에 대해서까지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한다면 감시 대상 회사 수는 수천 개로 늘어난다.

국민연금이 대표소송을 하겠다고 나서는 근거는 2016년에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다. 코드는 자치규범인데, 기관투자가들은 그들에게 돈을 맡긴 일반 투자자의 집사(steward)이니, 스스로 ‘수탁자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자가 발전한 것이다.

기관들은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를 통해 수탁자 의무를 이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본 사람들은 인게이지먼트를 ‘건전한 목적을 가진 대화’로 번역한다. 기관들이 기업 경영책임자 등과 만나 기업 가치를 높일 방안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주주 제안과 표 대결을 통해 억지로 특정인을 임원에 선임 또는 해임하려 들거나, 대표소송을 통해 기업인을 벌주기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업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왜곡되고 변질돼 왔다. 정부의 이해관계와 시민단체의 입김에 휘둘리는, 독립성이라고는 도무지 없는 국민연금이 소위 ‘총대’를 멨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일본 GPIF, 캐나다 CPPIB, 미국 CalPERS, 네덜란드 ABP와 함께 세계 5대 연기금에 들지만 유일하게 정부 산하에 있다. 일본 공적연금 GPIF는 직접 국내 주식을 보유하지 않는다. 의결권 등 주주권 행사도 직접 하지 않고 외부자산운용사에 위임한다.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이고, 3명의 차관, 근로자 및 지역가입자 대표, 관계전문가 등이 위원이다. 기금의 42%를 기여하는 사용자 측 대표는 위원 20명 중 겨우 3명이다. 국민연금은 대표소송 결정 주체를 기금운용본부에서 ‘수탁자책임위원회’로 이관할 계획이라고 한다. 수탁위 위원 9명 중 사용자 대표는 3명뿐이다. 심하게 편향된 데다, 스스로 결정에 대해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비상설 위원회에 맡기고 자신들은 빠진다는 오해를 받기 딱 좋다.

국민연금은 그간 주주 활동을 열심히 해왔다. 2021년 1∼10월 총 747회 주총에 참석해 3319개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미 수탁자 책임을 충분히 이행한 것이다. 대표소송은 인게이지먼트를 넘어서는 경영 간섭이다. 국민연금은 연기금 고갈을 목전에 두고 있다. 소송에서 승소해도 손해배상금은 회사로 돌아가고, 국민연금에는 실익도 없다. 지금 기업에 강제로 걷은 돈으로 주주 노릇을 하면서 기업을 압박하는 과욕을 부릴 때가 아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