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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들이 46년 동안 매해 첫날 보는 영화[석영중 길 위에서 만난 문학]

입력 | 2021-12-31 03:00:00

러시아 영화 ‘운명의 아이러니’의 DVD 표지(왼쪽 사진). 이 영화는 1950년대 말부터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 전역에 획일적으로 지어진 서민 아파트인 ‘흐루숍카’를 주된 배경으로 획일성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진 출처 아마존·위키피디아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러시아 사람들의 새해맞이에는 선물교환, 대통령의 신년사, 카운트다운 행사, 붉은 광장의 불꽃놀이 외에 한 가지 독특한 ‘리추얼’이 더해진다. 신년 특집으로 TV에서 방영되는 ‘운명의 아이러니, 혹은 사우나 잘 하세요!’라는 기묘한 제목의 영화 감상이 그것이다. 1976년 1월 1일 저녁 6시에 소비에트 공영방송을 통해 공개된 엘다르 랴자노프 감독의 이 영화는 즉각 1억 명이라는 놀라운 숫자의 시청자를 브라운관 앞으로 잡아끌었다. 같은 해에만 몇 차례 재방송되고 다시 영화 버전으로 극장에서 상영된 이후 현재까지 해마다 연말연시 단골 메뉴로 안방극장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영화다.》

‘운명의 아이러니’는 구소련의 아파트를 풍자하는 짤막한 애니메이션으로 시작된다. 창의적인 건축가가 제안하는 멋진 설계도는 번번이 거부당하고 소련 전역에, 해변이건 사막이건 얼어붙은 산악지방이건 똑같은 아파트 건물이 마치 행진하는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우뚝우뚝 솟아오른다. 애니메이션은 당대 소비에트 주거문화를 그대로 반영한다.


획일성에 대한 풍자


제4대 소련 공산당 서기장 흐루쇼프(1955∼1964년)는 전후의 고질적인 주거 부족을 타파하기 위해 대규모 서민 아파트 건설을 시도했다. 그는 스탈린 시대 건축의 비효율성을 강력하게 질타하면서 “견고하고 아름답고 편안하고 저렴한 주거 공간”의 공급을 약속했다. 예술성보다는 경제성에, 질보다는 양에 포커스를 맞추어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믿을 수 없이 넓은 지역에 소비에트 인민을 위한 주택을 건설하는 것이 목표였다. 1959년에 모스크바 남서부 체료무시키 지역에 들어선 5층짜리 콘크리트 패널 아파트 건물을 필두로 동일한 형태의 수없이 많은 서민 아파트가 지어졌다. 흐루쇼프의 지휘로 지어져 ‘흐루숍카’라 불리는 이 아파트들은 심각한 주택난 해결에 도움이 됐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구조와 비좁은 주방, 층간소음은 끊임없이 입주민의 불만을 야기했다.

영화 ‘운명의 아이러니’ 초반에 삽입된 애니메이션에서 ‘흐루숍카’들이 행진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흐루숍카’의 획일성은 ‘운명의 아이러니’를 받쳐주는 토대다. 영화가 시작되면 살짝 비꼬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전에는 낯선 곳에 가면 외롭고 어리둥절했는데 이제는 어느 도시를 가든 똑같은 길, 똑같은 건물, 똑같은 아파트가 있어 조금도 외롭지 않고 내 집처럼 편안하다.” 영화는 바로 이 “내 집처럼 편안함”의 “아이러니”를 축으로 진행된다. 새해 전날, 모스크바. 서른여섯 살 외과 의사인 주인공 제냐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여자친구 갈랴와 단둘이 새해를 맞이할 예정이다. 자정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어 제냐는 친구들과 사우나에 간다. ‘바냐’라 불리는 러시아 사우나는 스팀욕을 한 뒤 휴게실에서 지인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먹고 마시며 담소할 수 있는 일종의 복합 사교 공간이다. 술이 약한 제냐는 친구들의 성화에 맥주와 보드카를 섞어 마시는 바람에 인사불성이 되어 실수로 레닌그라드(오늘의 상트페테르부르크)행 비행기에 올라탄다.

레닌그라드 공항에 내린 제냐는 여전히 만취한 상태에서 택시 기사에게 모스크바 아파트 주소를 불러준다. 레닌그라드에도 동일한 이름의 거리와 동일한 아파트 건물이 있기 때문에 기사는 아무런 의심 없이 승객이 불러준 주소로 그를 데려간다. 제냐는 건물 입구도, 구조도, 아파트 문도, 심지어 열쇠구멍까지 똑같은 타인의 아파트에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들어간다. 현관도 벽지도 가구도 똑같은 그 집에서 제냐는 침대 위에 쓰러져 잠이 든다. 잠시 후 이 아파트의 주인인 여주인공 나쟈가 돌아오고 그녀의 약혼자 이폴리트가 등장하면서 영화는 엎치락뒤치락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에 따라 흘러간다. 본의 아니게 새해를 함께 맞이하게 된 제냐와 나쟈는 티격태격하다가 하룻밤 새에 사랑에 빠지고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같은 영화, 해마다 다른 느낌


한 나라의 국민이 이념과 체제를 초월하여 46년 동안 새해 첫날에 같은 영화를 줄기차게 보고 또 본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성공적인 새해맞이 영화는 연말연시를 배경으로 하고 실제로 연말연시에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운명의 아이러니’는 그 원칙을 따르는 동시에 그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새해맞이의 의미를 환기한다. 새해 전날 자정은 누구에게나 문자 그대로 송구영신의 순간이다. 사람들은 이 순간 과거에서 미래로 건너간다. 그래서 어느 문화권에서건 이 시간을 특별하게 기념한다. 시간적인 건너감은 회한과 심리적인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내포한다. 남녀 두 주인공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자정의 시간을 건너가면서 자신들의 삶을 반추하고 결국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뜬다. “이 밤을 위해서 우리가 평생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청자들이 해마다 똑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볼 때마다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건너감의 경험이 그들의 삶에 매해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사람의 일상은 표준화와 평준화를 피할 수 없다. 랴자노프 감독의 탁월성은 표준화되고 규격화된 일상으로부터 가장 독창적인 사랑의 서사를 끌어냈다는 점에 있다. 그는 “영혼도 없고 얼굴도 없는” 저 황폐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가슴 설레는 사랑 이야기를 직조했다. 감독이 획일성을 축으로 벌이는 절묘한 게임은 경이롭다. 획일성은 그에게 삶을 답답하게 만드는 조건인 동시에 삶의 특별함을 만들어내는 조건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대사 “레닌그라드에 동일한 길, 동일한 건물, 동일한 아파트가 있는 덕분에 이런 행복이 찾아왔네!”를 냉소로만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 영화가 부리는 마술이다. 그는 평범함과 비범함을, 진부한 것과 창조적인 것을 삶의 불가결한 두 측면으로 연결시켜 준 것이다.


척박한 현실서 꿈꾸는 희망

‘운명의 아이러니’는 새해맞이 영화의 문법인 마법과 환상을 현실에 대한 사유 그 자체로 구현했다. ‘흐루숍카’는 철거와 재개발을 거치며 이제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역사학자가 폐허 속에서 실재를 본다면 작가는 실재 속에서 환상을 예견한다. 랴자노프 감독이 오래전 척박한 현실에서 읽어낸 환상은 코로나 시대를 견디고 있는 우리에게 ‘희망’이란 낱말로 다가온다.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오프라인 카운트다운 행사는 축소되거나 취소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오늘 자정, 또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시간의 강을 건널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희망찬 새해를 기원한다!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