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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세대 전위예술가 김구림 화백, 화단의 이단아 “후회는 없다”

입력 | 2021-09-29 03:00:00

“배울 스승없다” 미대 자퇴뒤 독학… 1958년 첫 개인전 후 영역 깨고
영화-비디오아트-무용까지 섭렵… 당시 화단은 ‘미친 사람’ 취급
해외서 백남준-잭슨 폴록과 어깨… 귀화 뿌리치고 귀국했지만 ‘찬밥’
설움의 세월속 작품세계 만들어… 내달 17일까지 80점 개인전 열어



서울 종로구 자택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김구림 화백, 그는 1969년 실험적 전위미술을 표방한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등의 결성을 이끌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다들 짚신이나 고무신을 신던 시절 홀로 맞춤양복을 입은 아이는 고독했다. 부유한 집안의 튀는 아이를 반기는 친구는 없었다. 부모가 집에 없는 사이 양복집에서 물건 배달이 온 날, 아이는 옷을 갈기갈기 찢었다. 이제 팔순을 넘긴 노장은 “그땐 날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참 서러웠다”고 했다.

‘고독한 개척자’ 김구림 화백(85)은 한국의 1세대 전위예술가다. 1969년 국내 첫 실험영화인 ‘1/24초의 의미’를 연출한 데 이어 이듬해 ‘제1회 서울국제현대음악제’ 총연출을 맡았다. 미술은 물론이고 영화, 음악, 무용, 연극 등 예술의 거의 모든 장르를 섭렵한 ‘르네상스인’ 그 자체다. 27일 서울 종로구 자택에서 만난 그는 자신에 대해 “몰락한 귀족 같지 않냐”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김구림은 한국 미술계의 이단아였다. 60여 년의 예술 활동을 회고하며 “나 스스로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신기할 때가 있다”고 자평했다. 1958년 첫 개인전을 연 그는 회화, 판화, 조각, 설치, 비디오아트 등 전방위로 미술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한강변 잔디를 태워 생명 순환의 과정을 표현한, 이른바 ‘대지미술’을 국내에서 처음 시도했다. 기성예술에 대한 장례식을 열기도 한 그의 파격 행보는 신문 문화면보다 사회면에 더 많이 났고 화단은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건 1985년 도미 이후였다. 개인전, 백남준과의 2인전 등으로 이름을 알리며 미국 미술계에서 귀화 권유까지 받았다. 이를 마다하고 2000년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2012년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이 잭슨 폴록 등과 함께 그의 작품을 전시한 데 이어 이듬해 서울시립미술관이 그를 재조명했지만 관심이 오래가진 않았다. 문화교실과 대학 강사 등을 전전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쌀이 없다”는 아내의 말에 가나아트재단 이호재 회장에게 작품 판매를 부탁하기도 했다. 김구림은 그날을 떠올리며 “내 자존심이 어떻게 됐겠나. 몇 번이고 고국을 떠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선보인 신작 ‘음과 양 20-S, 2’(2020년). 시대상을 작품에 반영하는 작가는 자가 격리, 지친 의료진, 외국인 입국 제한 등을 다룬 코로나 시대의 신문기사를 작품 배경에 뒀다. 가나아트센터 제공

설움의 세월이었지만 작품에 대한 열정은 결코 식지 않았다. 화단에 대한 울분, 시대를 향한 날선 해석은 그의 정체성이 됐다. 그는 ‘음과 양’ 시리즈를 통해 난민, 성형, 물질주의 문제를 다뤘다. 일간지와 각종 잡지를 폭넓게 읽으며 뉴스를 꿰고 있는 그는 이달 17일부터 다음 달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여는 개인전에 선보인 신작 ‘음과 양 20-S, 2’(2020년)에 팬데믹 기사를 반영했다. 전시에는 총 80점의 회화와 오브제, 드로잉이 포함됐다.

“비난을 받으면서도 단연코 후회해본 적 없다.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다 죽는다’는 생각뿐. 고집 센 내가 그 고집대로 산 거다.” 그의 이런 성미는 남다른 삶의 궤적을 만들었다.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답해주는 교수가 없어 미대를 자퇴했다. 밖에서도 스승을 찾을 수 없던 그는 헌책방에서 잡지 등을 뒤지며 예술을 독학했고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열혈남아는 이제 원로가 됐지만 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다고 했다. 3년쯤 전 말기 암 판정을 받은 뒤에는 자택에 딸린 작은 화실에서만 작업한다. 대작을 마음껏 못하는 게 아쉽단다. 그는 내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공동기획단체전 ‘아방가르드: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에 출품할 예정이다. “작가의 체취와 감정이 화면에 배어 있어야 한다”는 신조로 조수를 쓰지 않는 그는 “휠체어에 앉아서라도, 침대에 누워서라도 내 손으로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