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여성 참가시킨 정구대회 정신 청소년 체육 장려는 국가 백년대계
김종석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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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회 동아일보기 전국소프트테니스(정구)대회가 지난 주말 경북 문경에서 개막했다. 이 대회는 국내 단일 종목 대회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다. 1923년 제1회 전국여자연식정구대회로 시작됐다. 11개 여학교가 참가했다. 정구의 발상지 일본에서조차 가장 오랜 정구대회는 올해로 76회째를 맞으니 이 대회의 연륜과 계승의지를 가늠할 수 있다.
1920년대만 하더라도 여성의 대외활동이 쉽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첫 대회를 앞두고 ‘항상 방 안에 들어 있는 시간이 많아 허약한 조선 여자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여자의 운동을 권장함이 긴급하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서울 정동 제일고녀(경기여고 전신) 운동장에서 개최된 경기에는 경성 인구(25만 명)의 10%가 넘는 3만 명의 관중이 몰렸다. 남성 입장이 허용되지 않아 나무 위에 올라가 댕기머리에 흰색 치마를 입은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보기도 했다. 대한민국 체육 100년사는 이를 두고 ‘여학생들이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고 기록했다. 각계에서 상품이 답지하면서 부상도 푸짐했다. 비단우산 6개, 여자용 필통 20개, 개벽사 어린이(잡지) 20부, 천일영신환(소화제) 10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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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에 머물던 소녀들에게 운동을 통한 꿈과 희망을 키워준 한 세기 전 모습은 요즘도 절실하다. 국가의 미래인 청소년의 체육활동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0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10대의 35.8%는 규칙적인 체육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70세 이상(36.9%)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특히 10대 여성은 이 비율이 49%로 남녀를 통틀어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전문가들은 체육활동 활성화를 위한 물리적 환경을 조성하고 어려서부터 스포츠를 통한 자기 극복과 성공의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일찍부터 다양한 운동을 접해야 평생 스포츠도 가능하다. 스포츠 습관화 전략에 따라 영국에서는 3∼7세 아동에게 스포츠 재정의 25%를 투입한다. 2015년 ‘스포팅 퓨처(Sporting Future)’라는 정책을 발표해 모든 청소년이 매일 하루 1시간 체육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교육부, 문화미디어체육부, 보건사회복지부 등 관련 부처가 공조하고 있다. 정인선 대한정구협회 회장은 의사로는 보기 드물게 체육단체를 이끌고 있다. 중학교 때 라켓과 맺은 인연을 50년 가까이 잊지 못해서다.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공포된 스포츠기본법이 내년 2월 시행에 들어간다. 여기에는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자유롭게 스포츠에 참여하고 누릴 권리를 가진다고 돼 있다. 27개 조항에 걸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할’ 일이 A4용지 네 장 분량으로 빼곡히 담겨 있다. 이젠 현실적인 실천 방안에 집중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그 옛날 선각자들 볼 낯도 생길 것 같다.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