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가격표/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연아람 옮김/328쪽·1만8500원·민음사
각각의 사람에게 바코드를 부여한 이미지.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건 값이 매겨진다. 불편하고 논란을 일으킬 주제이기에 입 밖에 내지 않지만 인간의 생명 역시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민음사, STEVE VITALE 제공
이 책은 ‘사람의 목숨에는 값을 매길 수 없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윤리적 판단과는 별개로 현실에선 끊임없이 목숨 값을 계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통계전문가이자 보건경제학자인 저자는 “인간 생명에 일상적으로 생명 가격표가 매겨지고 있다. 생명 가격표는 투명하지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9·11테러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테러 직후 미 연방정부는 희생자 보상기금을 만들었다. 보상기금 단장인 케네스 파인버그 전 연방검사는 희생자의 비경제적 가치와 피부양자 가치, 경제적 가치의 3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유족에게 지급할 보상금을 정했다. 모든 사망자에게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비경제적 가치는 다른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25만 달러로 통일했다. 희생자가 보살펴야 할 가족을 뜻하는 피부양자 가치는 가족 1명당 10만 달러로 책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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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도 목숨 값을 끊임없이 계산한다. 1960년대 후반 미국 자동차 제조사 포드는 저가 자동차를 출시하며 생산비용과 사고로 인한 합의금 비용을 계산한 표를 만들었다. 가격이 싼 대신 안전성이 낮은 차를 몰다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당사자나 유족이 “제조사 탓에 사고가 났다”며 소송을 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포드는 내부에서 모의재판을 진행해 사망 시 합의금이 얼마나 될지를 일일이 계산했다. “기업들은 단기이익 창출을 위해 움직이고 때론 이를 위해 사람의 생명을 희생시키기도 한다”는 저자의 말을 읽으면서 내 목숨의 가치는 얼마일지 생각해보게 된다.
국내에서도 산업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적정 보상금이 얼마인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자연재해라도 정부나 기업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면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럴 때 ‘사람의 목숨 값을 정할 수 없다’며 고고한 원칙만 되뇔 순 없는 노릇이다. 보상금을 합리적으로 산정하는 방법을 정해야 불필요한 논란을 막을 수 있다. “생명의 가치가 어떻게 매겨지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의 건강과 안전, 법적 권리, 가족이 쉽게 위험해지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마저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저자의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