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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연옥약설’ 최초 현대 한글본 나왔다

입력 | 2021-06-23 03:00:00

19세기 중국 신부가 쓴 연옥 교리
구한말 필사본으로만 남아있어
임치균 교수, 한국어로 번역 출간




“연옥에 대한 가르침을 전하는 이 책을 조선 천주교도 유익하다고 판단해 번역 필사본을 만든 것 같다.”

임치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과거 가톨릭에서는 연옥을 지하세계에 존재하는 무시무시한 공간으로 가르쳤다”며 최근 출간한 ‘연옥약설(煉獄(략,약)說)’ 현대 한글 번역본의 의미를 이렇게 밝혔다. 구한말 전래된 가톨릭 서적 필사본이 현대 한국어로 번역된 건 처음이다. 한국문학 연구자인 임 교수가 전반적인 번역을, 한중연에서 종교학을 연구하는 조현범 교수가 천주교리 관련 개념 정리를 맡았다.

연옥은 천주교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살아 있는 동안 지은 죄를 씻고 천국으로 가기 위해 일시적으로 머무는 장소다. 연옥약설은 19세기 중국 천주교 책으로, 가톨릭의 연옥 교리를 집대성했다. 중국인 예수회 신부 이문어(李問漁·1840∼1911)가 1871년 상하이에서 썼고 구한말 한반도로 유입돼 한글 필사본이 만들어졌다.

책에는 연옥 교리의 핵심 내용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함께 서술돼 있다. 가령 연옥에 머무는 영혼들이 천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세상에 남아 있는 신자들의 기도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생전에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해 기도하지 않아 연옥을 떠나지 못하는 수도사 이야기가 담겼다.

정교하게 짜인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승천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선행을 채우기 위해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세상으로 보내진 80세 노인 안매빈의 이야기에서는 심판을 맡은 미카엘 천사가 그날의 ‘당직 천사’를 불러내는 대목이 나온다. 임 교수는 “당시 신자들에게 교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구한말 필사본은 당시 조선인들의 어문 생활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국어학적 가치도 있다. 저자들은 책 후반부에 구한말 조선인들이 사용한 문장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임 교수는 “가톨릭 교리서는 서양을 무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연옥약설은 동양인 신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몇 안 되는 사료”라고 말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