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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사랑한 사제, 영혼의 건축가와 만나니… 천사의 빛이 반짝

입력 | 2021-05-31 03:00:00

남양성모성지 성모마리아 대성당, 한국 첫 성모성지에 9년 걸려 완성
해 위치 따라 내부에선 ‘빛의 향연’
전담 이상각 신부 “기적의 건축물, 남북통일 위해 기도하는 성당 꿈꿔”
설계맡은 보타, 12번 수정끝에 결실




경기 화성시 천주교수원교구 남양성모성지 성모마리아 대성당 내부. 해의 위치에 따라 빛기둥과 신자들이 ‘천사의 날개’라고 부르는 형상의 모습이 달라진다. 남양성모성지 제공

25일 오전 찾은 경기 화성시 남양성모성지의 성모마리아 대성당. 비구름이 잠시 물러가자 미사가 진행 중인 이 성당의 제대(祭臺) 뒤편 유리창에 빛기둥이 생겼다. 신자들이 ‘천사의 날개’라고 부르는 날개들도 활짝 펴졌다. 해의 위치에 따라 좌우 날개들의 길이가 달라지는 빛의 하모니가 연출됐다.

이 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순교터로 알려져 있다. 나중에 신원이 확인된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부부 등 4명의 순교자뿐 아니라 더 많은 무명의 신자들이 이곳에서 처형됐다. 천주교수원교구는 1991년 이곳을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는 한국 가톨릭교회 최초의 성모성지로 선포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종식을 위해 연쇄적으로 기도하는 ‘고리 묵주 기도’ 국제성모성지 30곳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성모마리아 대성당의 외부 전경. 남양성모성지 제공

대성당은 건축을 사랑한 사제 이상각 신부(63)와 ‘영혼의 건축가’로 불리는 스위스 출신 마리오 보타(78)의 만남, 여기에 신자들의 헌신이 더해져 지난해 준공됐다. 성지 뒤편에 우뚝 솟아 있는 대성당의 두 타워는 50m 높이로 붉은 벽돌 50만 장이 사용됐다. 130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내부 신자석에는 시시각각 빛이 다르게 비친다.

성모마리아 대성당을 설계한 건축가 마리오 보타(왼쪽)와 성지 전담 이상각 신부. 남양성모성지 제공

이 신부는 1989년 인근 남양성당 주임 신부로 부임하면서 성지와 인연을 맺은 뒤 1995년 성지 전담 신부가 됐다. 당시 성지는 십자가와 작은 광장 정도만 있었고 대부분은 논과 야산 상태였다. 그는 도시계획법이 문화적 개발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개정되기 이전에 성지를 정비하면서 여러 차례 고발당해 재판까지 받았다. 이 신부는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개인적 체험에 이어 1990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지켜보면서 남북 통일을 위해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성당 건립을 꿈꿨다”면서 “교구와 신자들의 도움, 보타와의 만남이 기적을 만들어냈다”고 대성당 건축 배경을 밝혔다.

보타는 리움미술관과 강남 교보타워 등을 설계해 국내에서도 유명한 건축가다. 성당뿐 아니라 교회, 이슬람 모스크 등을 작업해 영혼의 건축가로 불린다. 남양의 대성당은 그가 설계한 성당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다. 2011년 작업을 맡은 그는 12번이나 설계를 수정하고, 코로나19 이전에는 한 해 4차례 한국을 찾아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10월에는 ‘20세기의 미켈란젤로’로 불리는 이탈리아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90)가 작업한 드로잉 성화(聖畵)와 십자가가 대성당에 들어설 예정이다. 성화는 가로 10m, 세로 3m, 십자가는 3m 크기다. 보타와 오랫동안 작업해온 반지의 작품은 ‘최후의 만찬’을 재해석했으며 유리로 장식되는 점을 감안해 뒷모습을 그린 것이 특징이다. 2023년까지 성당 내부 양쪽에는 이주 노동자가 많은 지역임을 감안해 동남아를 비롯한 8개의 해외 성모상을 조성한다.

이 신부가 전한 보타와의 일화가 흥미롭다. “2019년 중국으로 가던 보타가 인천국제공항에서 곧바로 성지에 왔어요.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높은 타워에 올라가 시공 상태를 점검해 깜짝 놀랐습니다. 그 과정을 ‘건축가의 십자가’라고 하더군요. 우리 요청으로 설계를 여러 번 바꿨는데 돈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어요. 가끔 ‘네가 천국에 갈 때 나를 데려가 달라’며 웃더군요.”

화성=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