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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졸릭이 본 美 외교 강점은 ‘실용주의’

입력 | 2021-05-29 03:00:00

◇세계 속의 미국/로버트 B 졸릭 지음·홍기훈 옮김/812쪽·3만2000원·북앤피플




로버트 졸릭이 쓴 미국 외교사 책이라기에 일단 택했다. 그처럼 세계경제와 외교 분야를 넘나들며 자신의 철학을 현실에 적용한 인물이 드물어서다. 아버지와 아들 부시 정권에서 국무부 부장관, 세계은행 총재,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지낸 졸릭은 단순한 관료가 아니다. 손열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그는 높은 수준의 자유화를 지향하는 자유무역협정(FTA)을 고리로 각국의 시장개혁을 유도하는 모델을 설계한 당사자다.

그러나 그를 시장의 힘을 절대시한 신자유주의자로만 규정하기는 힘들다. 2003년 미 정부의 농업보조금을 옹호한 데서 알 수 있듯 국내 정치지형에 따라 보호무역주의로 단번에 돌아서는 실용주의 노선을 고수했다. 좀 삐딱하게 보면 소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가까운 태도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 책은 그런 그의 태도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졸릭은 책 서두에서 현실주의 외교 대가인 헨리 키신저를 미국의 기를 꺾은 냉소주의자로 비판하고 있다. 키신저는 “미국인들은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 보기에 미국 외교정책이 과도한 개입과 후퇴를 반복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졸릭 관점에서 미국 외교는 인위적 관습과 추상적 개념, 도그마를 거부한 이른바 ‘실용주의’ 외교 노선을 추구해 일정 부분 성공을 거뒀다.

이와 관련해 졸릭은 미국 외교정책의 일관된 특징으로 북아메리카에 뿌리를 두고 해외무역과 기술, 동맹국과의 질서를 강조한 점을 들고 있다. 이와 함께 의회 동의 등 국내 정치를 중시하는 동시에 패권국으로서 추구하는 목적 지향도 미국 외교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쳤다.

이런 관점에서 졸릭은 중국의 부상과 트럼프의 동맹 방기가 동북아 역내 질서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 방향은 주변국들의 중국 수용 혹은 핵 억제력 개발의 두 가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예상이다. 졸릭은 트럼프 외교를 비판하며 다소 희망 섞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나는 미래의 세계질서를 형성할 미국의 역량이 트럼프나 그의 비판자들이 믿는 것보다 더 크다고 생각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