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북한 최고 지도자로선 처음으로 남쪽 땅을 밟은 김정은에게 판문점 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징검다리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을 목전에 두고 전격 취소를 통보해 무산 직전에 갔을 때 김정은이 부랴부랴 문 대통령을 찾은 곳도 판문점이었다. 이듬해 하노이 북-미 담판이 결렬된 뒤 남북미 3자 정상의 깜짝 회동도 벌어졌지만, 판문점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분단과 대결을 상징하는 예전 모습 그대로다. 한반도 평화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 우여곡절의 이벤트만 몇 개 더해졌을 뿐이다.
▷‘양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000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다.’ 두 정상이 낭독한 판문점선언의 흥분과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5개월 뒤 평양 정상회담에선 남북 간 실질적 종전(終戰)을 이뤘다는 평가까지 나왔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미 대화의 장기 교착은 남북관계의 진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남북 간 ‘전면적 획기적 진전’은 금세 ‘단계적 돌발적 후퇴’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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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주인은 남북이라지만 미국의 의지 없이는 어느 것도 풀리지 않는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북정책 공개를 앞두고 남북 모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요즘이다. 그간 북한의 온갖 욕설을 들은 문 대통령이다. 트럼프 시절 대북접근을 두고 “변죽만 울렸다”고 했다가 발끈한 트럼프로부터 험담까지 들었다. 중매자로선 술 석 잔과 뺨 석 대 사이에서 아쉬움의 표현도 쉽지 않은 예민한 시기인 건 분명하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