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수 감독이 본 영화 ‘미나리’
역시 이민 1.5세대인 스티븐 연(아버지 역)은 영화 촬영 내내 울었다고 했다. 자기 아버지 생각이 나서였겠지. 스티븐 연은 자신이 의사가 되기를 바랐던 아버지와 미국 선댄스영화제 미나리 프리미어에서 조용히 감정적인 시간을 보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윤여정에게도 1960, 70년대의 미국 이민자 생활은 낯선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 결혼과 함께 플로리다주로 이주해서 유학생의 아내로 아이 둘을 낳아 기른 세월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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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는 담담하고 솔직하게 진행되는 영화인데, 때론 괴롭고 잡다한 인생사를 덤덤히 보아 넘기는 큰 그릇이 느껴진다. 윤여정뿐만 아니라 스티븐 연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세상 곳곳의 이민자라면 누구라도 가슴 저미는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 제법 먹힐 것 같다. 나는 영화 마지막, 깊은 숲속 윤여정의 밭에 지천으로 널린 미나리 장면을 상상했었는데 정작 영화 속 미나리 밭은 소박했다. 정 감독은 나보다 훨씬 절제된 예술가로 보였다.(어쩜 제작비 때문이었나?)
정 감독과 스티브 연 등 이 영화를 기어코 만들어 내고야 만 젊은 세대들은 “의사나 교수가 되라”는 영화 속 아버지 세대의 고집을 꺾은 고집스러운 사람들이다. 젊고 자유로운 영혼의 윤여정은 묘하게도 두 세대 모두에 한 다리씩 걸친 경우이고(예의를 갖춰 작년에 소천한 윤여정 모친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 그러니 오스카를 향한 미나리의 여정은 수상 여부를 떠나 성공적일 수밖에 없다. 그건 그들이 이미 더없는 마음의 위안을 받았을 것이며, 제작비의 몇십 배를 상회하는 수익으로 보상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집스러운 아버지 세대, 또 그걸 고스란히 물려받은 젊은 세대는 결국 서로 같은 존재일 뿐이며, 그리고 그게 뭐 그리 나쁜 것만도, 늘 실패하는 것만도 아니라는 걸 통쾌하게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할리우드식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을 능가한다. 짜릿하다.
임상수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