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메이드 인 코리아’ 무기로 中 ‘해상민병’ 격퇴 나선 필리핀

입력 | 2021-04-17 15:55:00

한국산 FA-50PH 경공격기·호위함·초계함으로 남중국해 대중(對中) 압박




필리핀 공군이 운용하는 한국산 FA-50PH 경공격기. 사진 제공=한국항공우주산업

3월 28일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군도’, 필리핀명 ‘칼라얀 군도’, 베트남명 ‘쯔엉사 군도’) 분쟁 수역인 ‘휘트선 암초(Whitsun Reef)’ 상공에 전투기 편대가 나타났다. 전투기들은 빠른 속도로 초저공 비행해 인근에 정박한 어선 위를 스쳐 지나갔다. 무장한 전투기가 민간인 머리 위를 스치듯 비행하는 것 자체가 큰 위협이다. 만약 민간 선박이 실제 피해를 입었다면 전투기 조종사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기지로 복귀한 조종사들은 징계는커녕 국방장관의 격려와 칭찬을 받고 다음 출격을 준비했다. 필리핀 공군 제7전술전투비행대의 일이다.

중국의 ‘회색지대 전술’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 군도’, 필리핀명 ‘칼라얀 군도’, 베트남명 ‘쯔엉사 군도’)의 분쟁 수역인 ‘휘트선 암초(지도 속 화살표)’. 구글 지도 캡처

전투기들이 첫 출격을 마치고 복귀하자 델핀 로렌자나 필리핀 국방장관은 즉각 성명을 냈다. “필리핀 주권 수역을 침범한 중국 어선들은 즉각 퇴거해야 한다. 필리핀은 어민과 자원을 보호하고자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휘트선 암초는 국제법상 영토가 아닌 ‘해저 지형’이지만 필리핀과 중국, 베트남이 각각 영유권을 주장하며 다투고 있다. 지리적으로 보면 필리핀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포함돼 필리핀 영토와 가장 가깝다. 필리핀 팔라완섬에서 300㎞, 베트남 해안에서 650㎞, 중국 하이난다오 해안에선 1100㎞ 떨어져 있다. 

휘트선 암초에는 2월부터 중국어선 250여 척이 떼를 지어 정박해 있다. ‘삼국지’ 적벽대전 속 연환계(連環計)처럼 어선과 어선을 이어 거대한 방벽을 이뤘다. 조업을 위해 해역을 찾은 필리핀 어선은 물론, 필리핀 해양경찰의 단속도 물리치고 있다. 중국이 다른 남중국해 분쟁수역을 차지할 때 쓴 ‘회색지대 전술’이다. 해군·해양경찰 같은 공권력 대신, 국제법상 완전한 ‘민간인’을 내세워 해역을 점유하는 방식이다. 

중국 당국은 휘트선 암초에 있는 어선이 ‘순수 민간 어선’이라고 주장하지만 거짓일 개연성이 높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3월 29일자 특집기사를 통해 휘트선 암초에 몰려든 중국 어선의 실체를 추적했다.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해당 어선들은 ‘태산시범정어업발전유한공사(台山市帆程???展有限公司)’라는 업체 소속으로, 최근 2개월간 단 한 차례도 조업하지 않은 ‘위장 어선’이다. 현재 휘트선 암초 중국 선단의 지휘부 역할을 하는 대형 트롤어선 7척이 2017년 동시다발적으로 진수됐다. 진수식 당시 중국 인민해방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정찰기는 이들 선박에서 군복을 입은 인민해방군 병력을 발견했다. 이를 근거로 필리핀 측은 휘트선 암초에 있는 어선이 중국 해군의 통제를 따르는 ‘해상민병(海上民兵)’이라고 봤다. 해상민병은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산하 준군사조직이다. 법적 신분은 민간인이지만, 군의 통제와 군사훈련을 받고 있고 무장까지 갖췄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은 해상민병을 선봉으로 내세웠다. 해상민병 소속 ‘어선’은 남중국해 전역을 종횡무진 휩쓸며 주변국 선박을 공격·약탈한다. 2019년에는 필리핀 영해 인근에서 필리핀 어선을 들이받아 침몰시킨 뒤 도주했다. 호주 해군 헬기에 공격용 레이저 무기를 발사하고 도망간 적도 있다.

美 “해상민병 中 해군과 동일시, 강경 대응할 것”

남중국해 ‘휘트선 암초’ 인근에 몰려든 중국 선박들. 사진 제공=필리핀 해안경비대

미국도 해상민병에 대한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2019년 1월 존 리처드슨 당시 미 해군참모총장은 선진룽 중국 해군 사령원에게 전화를 걸어 “중국 해군에 협력하는 어선은 중국 해군과 동일하게 대할 것”이라며 해상민병을 국제법상 전투원으로 보고 대응할 것임을 경고했다. 다만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남중국해 일대의 해상 초계 전력을 크게 줄였다. 힘의 공백이 생기자 해상민병이 다시 준동하기 시작했다. 

휘트선 암초에 나타난 선단이 중국 해상민병이라는 보고를 받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격분했다. 로렌자나국방장관에게 강경 대응을 지시했고 필리핀 공군 제7전술전투비행대가 출격했다. 제7전술전투비행대는 필리핀 공군에서 유일하게 초음속 전투기를 운용하는 부대다. 필리핀 공군사령부 직할로 2017년부터 한국산 FA-50PH 전투기를 작전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 전투기는 정밀유도폭탄을 이용한 ‘족집게 타격’이 주특기다. OV-10, EMB-314 같은 저속 공격기가 아닌 FA-50PH를 투입한 것은 유사시 압도적 전력으로 중국 측을 제압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해상에는 필리핀 해군의 ‘호세 리잘’함과 ‘콘라도 얍’함이 대기 중이다. 2800t급 호위함 호셀 리잘은 현대중공업이 우리 해군의 대구급 호위함을 바탕으로 건조했다. 필리핀 해군 작전사령부 예하 서부해상군에 배속돼 스프래틀리 군도 일대의 방위를 전담하며, 필리핀 해군 최강의 성능을 자랑한다. 호세 리잘함을 보조하는 콘라도 얍함 역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다. 콘라도 얌은 한국 해군 충주함으로 활약하다 필리핀에 무상 공여된 초계함이다. ‘최강의 대간첩선’으로 정평이 났던 포함(砲艦)이다. 함명은 6·25전쟁에서 전사한 전쟁영웅 고(故) 콘라도 디 얍 대위를 기리는 의미다. 

필리핀군은 해공군 입체 전력으로 중국의 도발에 대응하고 있다. 그 이면엔 필리핀 안보를 한층 강화한 메이드 인 코리아 무기체계가 있다. 한국산 전투기와 군함이 세계 이목이 쏠린 분쟁 해역에서 어떤 활약을 보일지 기대된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85호에 실렸습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