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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공유파 “사다리를 엎어버리자” vs 소유파 “욕망은 인간의 본성”

입력 | 2021-04-01 03:01:00

[창간 101주년] 극과극-청년과 청년이 만나다




‘소유냐 공유냐, 그것이 문제다.’

동아일보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한규섭 연구팀이 만든 ‘정치·사회 성향 조사’에서 진보 4번째인 대학원생 이진명 씨(26)는 ‘주택 공유론자’다. 결과 값은 정 가운데가 중도라면, 보수와 진보는 각각 1~50까지 나뉘고 성향이 강해질수록 숫자가 작아진다.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월세 30만 원을 내고 살아가는 진명에게 집은 ‘감히 오르지 못할 사다리’다. “내가 그 사다리를 오를 수 없다면 차라리 사다리를 엎어버리자”는 게 그의 주장. 진명은 “청년뿐 아니라 중산층에게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해 주거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에서 47번째인 은희성 씨(34)는 ‘주택 소유론자’다. 2015년 결혼 당시 전세냐 자가냐를 오랫동안 고민하다 결국 자가를 선택했다. 언젠가 태어날 아이에게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선물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출을 할 수 있는 한 받아 마련한 서울 동대문구의 20평대 아파트 집값은 최근 3배 가까이 올랐다. 전세를 선택했던 또래 친구들과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는 현실을 보며 ‘소유론’은 더 확고해졌다. 희성은 “아무리 규제해도 내 집을 갖고 싶다는 사람 마음까지 막을 순 없다”고 믿는다.

부동산 공유파 VS.소유파. 세계관 최강자들이 16일 오후 6시 반경 서울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진명=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서울에서 내 집을 못 살 것 같아요. 부모님이 집값을 보태줄 수도 없는 형편이에요. 지금 당장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없으니까, 그게 너무 힘드니까 차라리 사다리를 엎어버리자는 거예요.

▽희성=심정은 이해해요. 하지만 소유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에요. 아무리 규제해도 본성까지 막을 수는 없어요. 차라리 서울의 낙후 지역을 재개발해서 민간 건설사가 아파트를 대량으로 공급해주면 어떨까요.

▽진명=당장의 분양가가 10억 원대일 텐데 제가 무슨 수로 살 수 있을까요. 재건축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는 청년들은 부모 잘 만난 금수저들뿐이에요.

▽희성=그렇다고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면 오히려 빈부격차만 커질 거예요. 당장 돈이 없어서 신혼희망주택에 들어간 또래 친구들을 보면 ‘그때 집 살 걸’ 후회하고 있어요. 잘 생각해보세요. 그 정책을 만든 사람들이 과연 공유주택에 살까요? 자기들은 다 대출받아 집 사놓고, 그렇게 재산을 수억 원씩 불려놓고 왜 청년들한테만 공유주택에 살라는 건가요.

▽진명=우리 사회가 주택을 자산으로 보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더 커진다고 봐요. 임대주택 공급이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더 이상 집을 살 필요가 없는 사회로 나아가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자산으로서의 집도 가치를 잃을 거라고 봐요.

▽희성=글쎄요. 현실적으로 저 같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집을 사요. 저는 아내와 미래의 아이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어 대출까지 받아 집을 샀어요. 결혼한 지 5년 만에 딸아이가 태어났는데, 집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아이가 여기저기 떠돌지 않고 한 곳에서 추억을 쌓을 수 있으니까요.

끝내 이견을 좁히진 못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하지만 2시간이 넘는 대화를 마친 뒤 희성은 진명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취업을 할 수 있을까,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을까, 아이를 낳고 살아갈 수 있을까 전전긍긍 고민하던 20대의 자신을 꼭 닮은 진명에게 희성은 이런 말을 남겼다.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요. 집값은 오르는데 대출은 막혀 있지, 취업은 점점 더 어려워지지…. 길이 다 막혔는데 이제 와서 집을 사라고 하는 게 오히려 더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리겠죠. 제가 진명 씨 입장이었어도 차라리 사다리가 엎어지길 바랄 것 같아요.”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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