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미야노 마키코, 이소노 마호 지음·김영현 옮김/284쪽·1만4000원·다다서재
마흔을 갓 넘긴 나이에 유방암의 다발성 전이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는 반복되는 방사선 치료로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느끼면서도 책을 쓰기로 결정한 것이 무책임한 행동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일 약속조차 지킬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책을 쓰겠다는 장기적 약속이 무슨 의미인가에 대한 숙고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인생을 과연 완벽히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에 대한 성찰을 통해 죽음 앞에서도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죽음을 앞둔 철학자가 투병하며 얻게 된 사유를 털어놓은 대상은 의료인류학자 이소노 마호. 시한부 선고를 받고 예정된 강연을 취소하려던 저자에게 강연 주최자인 이소노는 “어쩌면 건강한 내가 당신보다 먼저 교통사고로 죽게 될지 모른다”며 그를 만류하고, 이를 계기로 두 여성은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미야노와 이소노가 주고받은 스무 통의 편지가 이 책에 담겼다. 두 사람은 인간에게 찾아드는 만남과 질병, 반드시 맞닥뜨리게 되는 이별과 죽음, 죽음이라는 정해진 운명 앞에서도 멈출 수 없는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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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선고를 받은 후에도 수많은 강연과 행사에 참여하고 두 권의 책을 쓴 미야노는 이 책의 서문을 쓰고 몇 시간 뒤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보름 뒤 삶을 마감한다. 저자의 생애 마지막 기록에서 인간이 끝까지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엿볼 수 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