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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 후유증으로 43kg…운동하니 살 것 같았죠”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입력 | 2021-03-20 14:00:00


홍헌기 전 대표가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베트남 참전 용사인 그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생했지만 근육운동으로 이겨내고 70세를 넘어서도 건강하게 살고 있다. 홍헌기 전 대표 제공.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였던 홍헌기 전 미당도예 대표(72)는 고엽제 후유증을 근육운동으로 극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제가 49세 때인 1999년이었습니다. 병원에서 3,4개월 밖에 못 살 것 같다고 했죠.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던 때 어느 헬스클럽을 지다다 그곳에서 나오는 사람하고 부딪혀 넘어졌습니다. 제가 걸음도 제대로 못 걸어 비실비실 걷다 힘 좋은 사람하고 부딪혀 넘어진 거죠. 나이가 지긋한 분이었는데 운동을 해서인지 건강하시더라고요. 저를 일으켜 세워주며 ‘운동 한번 해보라. 운동하면 몸이 달라 질 것’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바로 헬스클럽으로 달려갔습니다.”

홍 전 대표는 1972년 마지막으로 베트남에 파견됐다. 백마부대 28연대 도깨비부대 이등병으로 배에 올랐다. 1975년 전쟁이 끝난 뒤 돌아와 처음엔 괜찮았는데 서른 중반부터 고엽제 후유증이 나타났다. 그는 “흰 가루가 농약인 줄 알았으면 안 먹었을 텐데 목이 마르니 수통으로 물을 담아 마셨던 게 화근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뇌에 악성 종양이 생겼고 폐로까지 전이가 됐다. 그는 “당시 함께 베트남에 갔다 온 동료들이 다 죽었다. 그 때까지 10만 명 정도가 사망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럴 줄 알았으면 베트남 갔다 와서 결혼을 안했어야 했는데 하며 후회도 많이 했다. 딸 셋인데 어떻게 할지 막막했다”고 했다.

“70kg 대였던 제 몸무게가 43kg까지 떨어졌어요. 헬스클럽에서도 안 받아주려고 했어요. 고정식 자전거를 타면서 자꾸 넘어지니 병원에 갈 사람이 무슨 운동이냐고. 그래도 사정사정해서 몇 달 운동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모 잡지에서 대한보디빌딩협회 산하 코치아카데미 강좌가 열린다는 것을 봤어요. 그래서 체계적으로 운동을 할 요량으로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창용찬 대한보디빌딩협회 코치아카데미 원장(66)을 만났다. 1999년 10월이었다. 창 원장은 당시 대한보디빌딩협회 이사로 코치아카데미 운영을 맡고 있었다. 창 원장은 “몸은 허약했는데 운동에 대한 투지가 남달랐다”고 기억했다.

“운동을 하다보니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장이 다 망가져 소화력이 떨어졌지만 닭 가슴살을 갈아서 7~8번 나눠 먹으면서 운동했습니다. 다른 보디빌더들은 하루 닭 가슴살을 4~5개씩을 먹는데 전 소화를 시킬 수 없어 하루 1개만 먹었어요. 그리고 하루 몇 시간씩 운동했습니다. 토하기도 했고 쓰러지기도 했지만 근육이 붙는 재미에 힘든 줄 몰랐습니다.”

홍헌기 전 대표가 전성기 시절 대회에 출전해 연기를 하고 있는 모습. 홍헌기 전 대표 제공.

웨이트트레이닝은 그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몸무게도 70kg대로 회복했다. 2000년 5월 서울 미스터코리아 대회에 출전해 50세 이상부에서 우승했다. 운동 시작한 지 7개월여 만이다. 한 달 뒤 미스터코리아 대회에서도 우승했다. 10월 YMCA 대회까지 석권했다. 창 원장은 “솔직히 홍 전 대표가 고엽제 환자인줄은 나중에 알았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을 해냈다”고 말했다.

“근육 운동을 한 지 2년이 지난 뒤 병원에 갔더니 뇌와 폐에 있던 종양이 말끔하게 사라졌어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지금은 뇌와 폐에 깍두기 크기 정도의 흉터만 남아 있습니다.”

홍 전 대표 사례를 일반화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운동을 하면 면역력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는 넘친다.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은 운동을 하면 열충격단백질(heatshock proteins·HSP) 합성된다는 것이다. 운동을 하면 체온이 상승하고 상승된 체온을 떨어뜨리기 위해 HSP가 합성되는데 이 HSP가 면역력을 키워준다는 것이다. HSP는 피로물질이 나오지 않도록 해 체력 회복을 돕기도 하며 뇌 호르몬으로 통증완화 물질인 엔돌핀이 나오도록 촉진시키기도 한다. 또한 NK(면역)세포라고 하는 림프구의 움직임을 활발하게 하고 항종양 기능을 갖는 체네 인터페론의 합성량을 증가시킨다. 체내 면역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운동으로 체온 1도를 높이면 면역력이 5배는 높아진다고 한다.

홍헌기 전 대표가 각종 대회에 출전해 획득한 트로피들. 홍헌기 전 대표 제공.

몸이 좋아지자 홍 전 대표는 더욱 운동에 매진했다. 지금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웨이트트레이닝 덕분이라는 생각이 확고했다. 몸도 더 좋아졌다. 2008년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아보디빌딩 대회 마스터스부분에 출전해 50세 이상부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홍 전 대표는 30대 중반부터 도자기를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어 운동에만 전념할 수는 없었다. 그는 “운동에만 전념했다면 우승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홍 전 대표는 제대로 운동하기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다양한 공부도 했다. 호주 시드니 국립 맥퀄리 의과대학에서 척추학, 중국 베이징대 의과대학에서 인체해부학, 고려대 척추클리닉 등을 찾아다니며 공부했다. 일반인을 위한 클리닉이 개설 됐을 때 공부한 것이다. 2011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BND 대학에서 자연치유학을 공부하고 왔다. 망가진 내장 때문에 소화가 안 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자연식에 대해 공부한 것이다.

대한보디빌딩협회 인사 법제 상벌부 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홍 전 대표는 10여 년 전부터는 대회 출전을 자제하고 있다. 2017년 보건복지부장관배 코리아보디빌딩 대회 그랑프리 대상을 받은 게 마지막이다.

홍 전 대표는 요즘도 매주 3~4회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고 있다. 간헐적 단식 차원에서 아침을 거르고 오전 9시부터 운동을 하고 있다. 그는 “공복에 운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개인적으론 그래야 더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여전히 지금도 음식 섭취를 양껏 하지는 못한다.

“솔직히 고엽제 환자는 내년을 보장할 수 없어요. 내장이 다 녹았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살기 위해 운동하고 있습니다. 동료들 다 갔는데 근육운동으로 지금까지 덤으로 살아 온 것이기 때문에 운동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한 이틀만 운동 안 해도 잘못하면 순간에 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운동하고 있습니다.”

홍헌기 전 대표가 운동하다 포즈를 취했다. 그는 베트남 참전 용사로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생했지만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이겨내고 70세를 넘어서도 건강하게 살고 있다. 홍헌기 전 대표 제공.

홍 전 대표의 꿈은 아시아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해 마스터스부 50대 이상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다. 60대 초반에 사업을 접고 도자기 만드는 사업체 쪽에서 일이 있을 때 파트타임으로 도와주고 있어 이젠 운동에 전념할 수 있다.

“10여 년 전에는 중국에서 올림픽이 예정돼 있었고 대회도 홍콩에서 열리는 바람에 중국계에 밀린 측면이 있습니다. 제가 70세를 넘겼지만 열심히 몸 관리해 지금도 50대에 꿇리지는 않습니다. 1년 열심히 몸 만들면 경쟁력이 생길 겁니다. 75세 이전에 아시아대회에 출전해 꼭 금메달을 따고 싶습니다.”

홍 전 대표는 살기 위해 시작한 웨이트트레이닝이지만 이젠 그에게 삶의 목표이자 즐거움이 됐다.

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