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교토국제고 박경수 교장의 꿈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 야구부가 설립 22년 만에 처음으로 봄 고시엔 대회에 출전한다. 박경수 교장이 19일부터 열리는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전국 32개 고교 이름이 적힌 포스터에서 ‘교토국제고’를 가리키고 있다. 교토국제고 제공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일본의 옛 이름)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일본 교토에 있는 한국계 민족학교 교토국제고교의 교가가 23일 공영 NHK 생중계를 통해 일본 전역에 방송된다. 일본 국민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인기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인 선발고교야구대회(봄 고시엔)에 이 학교가 출전하기 때문이다. 93년 고시엔 역사에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지는 것은 처음이다. 이 대회에 외국계 고교가 진출한 것도 사상 처음이다. 박경수 교토국제고 교장은 16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학교 구성원들에게 한국어 교가는 ‘아리랑’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일본 생활 속에서 어려움을 이겨내는 정신적 힘”이라며 “가슴 벅차다”고 말했다.
교토국제고는 일본에 4개뿐인 한국계 학교 중 하나다. 1947년 교토조선중학교로 시작해 1963년 고등부를 개교했고, 한국 정부의 중고교 설립 인가에 이어 2004년에 일본 정부로부터 정식 학교 인가도 받았다. 고교 야구부는 22년 전인 1999년에 창단됐다. 그해 처음 출전한 지역대회에서 0-34의 대패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부터 일본인 학생들도 받아들이기 시작해 야구부 규모와 실력을 키웠다. 현재 전교생 131명 중 일본인 학생은 93명으로 한국 국적 학생 37명보다 더 많다.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 교토국제고 제공
교토국제고에 입학하면 1박 2일간 오리엔테이션을 받는다. 이 기간 한국어 교가를 완벽하게 암기해야 한다. 한글을 모르는 일본인 신입생도 한국어 교가는 부를 줄 알게 된다. 일각에선 한국어 교가 제창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박 교장은 “70년 넘게 이어온 한국어 교가를 부르지 못하면 전국대회에 진출하는 의미가 퇴색된다. 일본인 학생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고 했다. 첫 경기를 치르는 23일 한국인 일본인 학생 모두 한국어로 교가를 부르게 된다. 일본인 학생들은 귀화한 한국 교포, 결혼한 한일 커플의 자녀 등 대부분 한국과 인연이 있다.
NHK가 중계할 때는 교토국제고 교가의 일본어 번역 자막이 화면에 표시된다. 교도통신은 “동해(東海)가 아니라 ‘동쪽의 바다(東の海)’로 표기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박 교장은 “한국어로 녹음한 CD를 대회 주최 측에 제출했고, 번역에 대해 어떤 질문도 요구도 없었다”며 “한일 우호 협력을 중요한 교육 목표로 하는데, 교가 가사 문제가 더 이상 커지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