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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도 나의 운명… 연기로 ‘인생 덩크’[선수는 끝 역전에 산다]

입력 | 2021-02-10 03:00:00

<1> 프로농구 출신 박광재




프로농구 선수 출신 배우 박광재가 8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본사에서 드라마, 예능, 뮤지컬 등의 무대를 부지런히 넘나드는 종합 연예인으로 살아가는 심정과 운동할 때의 기억, 앞으로의 인생 2막에 대한 각오를 털어놨다. 최근 사극에 출연하느라 수염을 기른 박광재가 자신의 사진이 담긴 태블릿 PC를 들어 보이고 있다. 앞으로도 다양한 모습을 담아 보여드리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사람 앞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하는데 운동선수도 마찬가지다. 노력과 운이 잘 맞아떨어져 현역과 지도자로 평생 한 우물을 파기도 하지만 다른 길을 찾아야 할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 경우가 많다. 낯선 무대가 힘들어도 유니폼 입고 땀 흘렸던 경험은 큰 힘이 된다.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편견을 오히려 밑천으로 삼아 제2의 인생에서 별이 되길 꿈꾸는 그들의 열정을 소개한다.》

“프로 입단할 때 선수 가이드북에 나온 제 프로필 ‘장래 희망’란에 ‘연예인’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잊고 있었는데 정말 배우가 진짜 운명인 것 같아요.”

프로농구 선수였던 박광재(41)는 이제 코트가 아닌 카메라 앞이 더 자연스럽다. 뮤지컬, 예능, 드라마, 영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는 배우이자 방송인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8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본사에서 만난 그는 “최근 허재 감독님이 우연히 내가 입단할 때의 선수 가이드북을 보고 그 사실(장래 희망은 연예인)을 알려줬다. 어쩌면 그 길을 향해 조금씩 마음이 움직였던 건가 싶어 놀랐다”고 말했다.

농구 명문인 경복고를 졸업한 그는 연세대 시절 3점슛도 잘 쏘는 센터로 주목받았다. 농구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2003년 프로농구 LG 입단 뒤 벤치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새 농구에 회의를 품게 됐다. “LG에서 뛸 때 (현)주엽 형이 있었고 전자랜드에서는 (서)장훈이 형이라는 넘을 수 없는 큰 벽이 있었다. 프로에 와서 기회를 받지 못하다 보니 농구에 서서히 질려 갔다.” 결국 2011∼2012시즌을 마치고 농구 유니폼을 벗었다. 그는 “은퇴 뒤 반년 동안 아무 생각 안 하고 살았다”고 말했다.

연세대 모교 코치 제안도 받았으나 거절했다. 농구하는 동안에 감춰졌던 ‘끼’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박광재는 “고교 때 단체로 놀이동산에 놀러 가면 사람들 앞에서 춤을 잘 춰서 상으로 인형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경복고 근처에 배창호 영화감독 사무실이 있었다. 그는 “유명 배우들이 자주 드나드는 걸 보고 ‘아, 감독님께 잘 보이면 은퇴 후에 캐스팅이 될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딱 그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프로농구 올스타전에서 화려한 댄스를 펼친 적도 있다.

은퇴 후 그는 지인의 추천으로 사극에서 작은 역할을 맡은 것을 계기로 2013년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에서 해적 자포코 역할로 출연했다. 이젠 10편이 넘는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자신이 연기한 영상을 볼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들어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자신과 체형이 비슷하고 선이 굵은 연기가 비슷한 배우 마동석을 롤 모델로 삼아 그의 연기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되짚는 게 습관이 됐다.

이제 드라마와 영화는 물론이고 예능까지 종합 연예인으로 조금씩 울림을 주기 시작한 그의 목표는 두 가지 인생 ‘덩크슛’을 하는 것이다. 첫 번째 덩크슛은 한국 농구 발전에 작은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3 대 3 농구선수이자 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두 번째 덩크슛은 배우로 ‘이 역할이라면 박광재가 당연히 나오겠네’라고 인정을 받는 것이다. 언젠가 한국농구연맹(KBL) 총재와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되고 싶다는 포부도 있다. “진로에 고민하는 후배 선수들에게 다양한 삶의 길이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요.”

프로시절 그는 덩크슛이 한 개도 없다. “대학 1학년 때 고려대와의 경기에서 덩크슛을 시도하다가 실패했는데 그 영향으로 팀이 졌어요. 그 뒤로 덩크슛 트라우마가 생겼어요. 이젠 코트 밖에서 호쾌한 덩크슛을 꽂는 모습을 꿈꾼답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