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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원전 문건, 또 ‘신내림’ 받았다고 할 건가[오늘과 내일/정연욱]

입력 | 2021-02-02 03:00:00

정부, 北원전 건설 문건 작성·삭제 사실 드러나
문건 모두 공개하고 진솔하게 국민에게 설명해야




정연욱 논설위원

2018년 산업통상자원부가 작성한 대북 원전 지원 문건 리스트가 공개되자 여야 수뇌부가 정면충돌했다. 정치권 공방에 가급적 거리를 둬온 청와대가 ‘북풍 공작’이라며 정색을 한 것도 이례적이다. 그만큼 대북 원전 이슈가 갖는 인화성이 간단치 않다는 방증일 게다. 여권의 초기 대응은 오락가락했다. 해당 문건은 박근혜 정부 시절 검토됐던 내용이라고 주장한 여당 의원이 산업부가 공개적으로 부인하자 “내용은 모르고 추론이었다”고 발뺌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제의 문건은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180504)’ 등 17건이다. 작성 시점은 1차(4·27), 2차(5·26) 남북 정상회담 사이다. 1차 정상회담이 끝난 뒤 문재인 대통령은 후속 조치를 차질 없이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이 1차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에게 준,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담았다는 USB메모리가 개괄적 총론이라면 산업부 문건은 실무 차원에서 준비한 후속 조치 중 하나일 것이다.

논란이 계속되자 산업부는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 내용은 공개했다. 북한 내 건설, 비무장지대(DMZ) 건설, 국내 신한울 원전 3, 4호기를 통한 전력 송전 등 3가지 방안을 검토한 결과 첫 번째 방안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했다. 산업부는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닌 내부 검토 자료’라는 문건 내용을 강조했다. 청와대 등 윗선 보고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권 이듬해 청와대 위세가 기세등등하던 시절에, 그것도 대통령의 지시 사항인데도 실무자가 이런저런 가능성만 살펴본 습작용 문건이라는 주장은 쉽게 납득할 수 없다. 공교롭게도 그 시점은 산업부가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따라 사용 연한이 남아 있는 월성 원전의 조기 폐쇄를 밀어붙이던 시기였다. 그렇다면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율배반 아닌가. 공직자가 그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제 마음대로 탈원전 기조에 배치되는 원전 건설을 검토할 수 있었을까.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월성 원전 폐쇄 관련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일요일 심야에 도둑처럼 잠입해서 문건들을 지웠던 산업부 공무원은 검찰 조사에서 “신내림을 받았다”는 황당한 진술을 했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공직사회에서 든든한 정치적 뒷배 없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진술을 할 수 있었을까. 더욱이 이번에 문제가 된 북한 원전 문건은 월성 원전과 관련된 감사원 감사와 전혀 무관한 내용인데도 모두 삭제됐다. 삭제 경위는 오리무중이다. 감사원 감사와 뒤를 이은 검찰 수사가 없었다면 이런 일은 그냥 묻혀버렸을 것이다.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이 감사원장을 겨냥해 “집 지키라 했더니 안방을 차지한 개”라고 막말을 퍼부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여권 일각에선 대북 원전 지원 구상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김영삼 정부 시절 북핵 협상으로 북한 신포에 경수로 2기를 지어주기로 한 사례를 든다. 당시 경수로에선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추출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며 우리나라와 세계를 상대로 핵위협을 벌이고 있다. 당시 상황을 20여 년이 지난 지금 기계적으로 대입할 순 없을 것이다.

야당이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에 나서겠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버려야 할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라고 비난했다. 북한과 탈원전은 현 정부 정책의 핵심 키워드다. 여야가 서로 쉽게 물러서기 어려운 이유다. 더욱이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여권은 문서 내용을 모두 공개하고 국민에게 진솔하게 설명해야 한다. 좌고우면할수록 의혹은 더 커질 뿐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