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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성범죄 의원-지자체장 출마제한, 10년간 손놓은 국회

입력 | 2021-01-28 03:00:00

관련법안 11건중 국회 통과 ‘0건’
일반공무원 임용규제는 신속처리
“성범죄 대책조차 내로남불” 지적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과 같이 선출직 정치인들의 성범죄가 잇따르고 있지만 정작 국회에선 지난 10년 동안 성범죄를 일으킨 선출직 공무원을 규제하는 법안을 단 한 건도 처리하지 않고 방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회는 성범죄 연루 일반 공무원에 대한 임용규제 법안은 신속 처리해, 성범죄 대책조차 ‘내로남불’ 행태를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가 27일 19∼21대 국회에서 발의된 공직선거법 796건, 정치자금법 116건 등 총 912건의 선출직 정치인(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 관련 법률을 전수 분석한 결과 범행 당사자의 피선거권을 제한하거나 성범죄자가 소속됐던 정당에 선거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법안 등 ‘선출직 규제법안’은 단 11건에 불과했다. 이 중 제대로 논의돼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전무했다.

반면 국회는 성비위를 저지른 공무원, 군인, 경찰, 초·중등 교사 등 선출직이 아닌 공무원들의 임용제한 관련 법안들은 상정된 지 두 달 만에 통과시킨 사례도 있다. 2017년 말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 지난해 ‘n번방’ 사건 등이 불거질 때마다 법안을 몰아치기 처리한 것이다. 정치권에선 박 전 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선거에 네 번이나 출마했던 정의당 김종철 전 대표 등 사회적 영향력이 큰 정치인들 스스로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성범죄 연루자 소속 정당에 재·보궐선거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은 “‘권력형 성범죄’ 근절을 위해선 정치권 스스로가 자신들과 관련된 법안 심사부터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성범죄자 출마제한 과해” 입법 뒷짐… 전력자 6명, 21대총선 출마



“하나하나 구체적인 죄명을 자꾸 추가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피선거권 자체가 기본권인데 온갖 그물을 다 쳐서 제한하는 셈이다. 어차피 선출직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판단하는 것이고…. 좀 신중해야 한다.”(야당 소속 A 의원)

“국민 눈높이에서 보면 선출직 공직자에 대해 보다 높은 도덕성과 엄격함을 주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법률로 강제하는 것은 또 다른 논란의 소지가 있다. 결국 선택은 국민의 몫 아닌가.”(여당 소속 B 의원)

20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8명은 2018년 4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총 6차례 회의를 열고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개정안 등 법안 507건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국회 속기록에 따르면 1년에 걸쳐 총 10시간이 넘게 진행된 회의에서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등 선출직 공직자가 성범죄에 연루됐을 경우 출마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에 대해 논의된 내용은 이 두 마디뿐이었다. 여야는 “성범죄자가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법률로 제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과잉 입법”이라는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한 뒤, 더 이상 논의는 진행되지 않은 채 이 법안은 2020년 5월 29일,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 21대 총선에 성범죄자 6명 출마

2012년 시작된 19대 국회부터 현재 21대 국회까지 약 10년 동안 발의됐던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개정안 912건을 전수 분석해 보면, 의원들이 자신들의 출마와 관련된 법안에 얼마나 소극적이었는지 잘 드러난다. 912건 중 성범죄에 연루된 사람이나 소속 정당을 규제하는 법안은 11건에 불과했고, 단 한 건도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 법안들의 주요 내용은 성범죄 전력자가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재·보궐선거 비용을 소속 정당이나 개인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데 그쳤고, 당선 뒤의 구체적인 성범죄 방지책 등은 없었다.

그나마 의원들은 지난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으로 보궐선거가 열리게 된 뒤 무더기로 법안을 발의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 동안 국회의원 스스로 성범죄자 출마를 제한하는 법안은 불과 5건밖에 없었고, 나머지 6건이 박·오 전 시장 사건 이후인 21대 국회 들어서 발의된 셈이다. 이 법안들 역시 21대 국회에서 한 번도 논의되지 않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국회가 선출직 공직자들의 성범죄 규제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각종 선거에선 성범죄 전력자들이 잇따라 출마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후보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월 21대 총선에 출마한 성범죄 처벌 전력자는 6명이나 됐다. 이들이 당선되진 않았지만 강제추행, 음란물 유포, 성폭력범죄특별법 위반 등 범죄 전력을 갖고 있었다.


○ “다른 공무원에게는 엄중한 잣대”

국회의원들은 군인, 경찰관, 교사 등 선출직이 아닌 공무원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잣대와 심사 속도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성범죄자의 공무원 임용 등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은 19∼21대 국회에서 44건이 발의돼 21건이나 통과된 것으로 나타났다(대안으로 반영돼 폐기된 법안 포함).

특히 의원들은 성범죄 관련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몰아치기 심사를 진행했다. 2018년 3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행 폭로 이후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자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 개정안, 군인사법 개정안을 모두 한 달 만에 처리했다. 아동 성 착취 동영상을 유포한 ‘n번방’ 사태 파장이 컸던 지난해에는 성범죄자에 대해 교사 임용을 금지시키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불과 일주일 만에 처리하기도 했다. 국회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국회의원과 다른 직종의 성폭력 가해자를 대하는 태도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고 지적했다.


○ “정치개혁보다 동료 의원 눈치가 우선”

국회의원들이 동료 의원들의 눈치만 보며 개혁 입법에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정치개혁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선거법을 고치자고 의원에게 제안해도 ‘눈치가 보인다’며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올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들어가는 비용은 서울시 571억 원, 부산시 267억 원 등 총 838억 원이다. 모두 서울 시민과 부산 시민의 세금에서 나온 재원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선출직 공무원의 경우 성범죄에 대한 민감도가 평생 공무원을 하는 사람보다 낮은 편”이라며 “반복되는 정치권의 성범죄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출직에 나설 때부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경석 coolup@donga.com·윤다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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